언론노조 ‘젠더보도 가이드라인’ 발간
‘안사람/바깥사람’ ‘맘카페’ ‘처녀작’ 등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근거한 표현 사용 자제
‘검은 손, 몹쓸 짓’ ‘짐승, 늑대, 악마’ 등 표현
성범죄 발생의 사회구조적인 맥락 가려 지양해야
가해자 심정·업적 등 보도는 피해자 고통 가중
온·오프라인 형태로 배포·발행 예정

언론노조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에서 바꿔쓰기를 권고하는 표현들. ⓒ여성신문
언론노조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에서 바꿔쓰기를 권고하는 표현들. ⓒ여성신문

‘처녀작’ ‘짐승’ ‘몹쓸 짓’... 모두 기사에 흔히 쓰이는 단어다. 사람들은 선정적이고 성차별적인 언론 보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고, ‘기레기’는 언론인을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됐다.

이에 언론노조는 미디어 콘텐츠에서 성차별을 줄이고, 여성을 표현함에 있어 양적·질적 균형을 추구하기 위한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을 발간한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은 성평등 보도 원칙을 설명하는 자료로, 언론인들이 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를 포함하고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표현, 제목, 소재 선정, 이미지 선택, 젠더 기반 폭력 사건 보도, 스포츠 보도 등에 필요한 성평등 지침과 설명을 체크리스트로 확인하며 언론인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제2장 ‘언론 보도와 성평등’ 부분에서는 취재 및 보도시 유의할 점으로 대표성과 다양성, 고정관념의 문제를 다뤘다.

우선, 표현 중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근거한 것이 사용되지 않았는지 검토할 수 있게 했다. ‘외조/내조’ ‘안사람/바깥사람’과 같은 표현은 여성을 사적 영역, 남성을 공적 영역에 한정하는 표현으로, 각각 ‘배우자의 도움’ ‘배우자’ 정도로 대체할 수 있다. ‘맘카페’ ‘유모차’ 등의 용어도 ‘육아카페’ ‘유아차’로 바꿔 육아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개선할 것을 당부했다. ‘처녀작’ ‘처녀비행’ 등 출발이나 시작을 여성에 은유하는 어휘도 ‘첫 작품’ ‘첫 비행’ 등으로 바꿔 써도 무방하다. 이런 표현은 취재원이 사용하는 경우 부득이하게 그대로 옮겨야 할 수 있지만, 특별한 맥락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봤다.

제3장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보도’에서는 특히 어휘와 표현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많은 언론에서 성범죄 사건 보도시 사용하고 있는 ‘검은 손, 몹쓸 짓, 나쁜 입’ 등의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 성폭력 범죄의 가해 행위를 너무 자세히 묘사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은유를 통해 대략 ‘나쁜 일’이라는 의미만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짐승, 늑대, 악마’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성폭력 가해자의 대다수는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일반인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성폭력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표현함으로써 성범죄 발생의 사회구조적인 맥락을 삭제하는 것으로, 지양해야 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도 피해자의 상태를 서술할 때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데, 성폭력 범죄가 평생 가는 고통이라는 것은 여성의 정조에 대한 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역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피해자들은 물론 피해 사실로 인해 괴롭지만, 늘상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피해 이후 일상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피해자답지 않다’며 의심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에 실린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보도 체크 리스트 일부이다. ⓒ언론노조·여성신문
언론노조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에 실린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보도 체크 리스트’ 일부 예시이다. ⓒ언론노조·여성신문

근본적으로는 취재에 앞서, ‘이 사건이 보도될 가치가 있는지’부터 성찰할 것을 권하고 있다. 만약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피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피해자가 신원을 밝히고자 할 경우, 이로 인해 예상되는 2차 피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였는가?’ ‘피해자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가?’ 등을 체크리스트에 포함해, 피해자를 단순 특종 보도를 위한 수단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도록 했다.

보도시에도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가해자의 사생활·심경을 전달하거나 가해자의 업적을 서술하는 등, 가해자 입장에서 공감을 유도하는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에서도, 그의 출소 소식을 전하며 ‘정치 복귀 가능성’ 등을 재는 기사들이 다수 쏟아진 바 있다. 이런 보도는 피해자의 심경을 고려하지 않는, 전형적인 가해자 중심적·온정적 보도다.

최근 많아진 디지털 성폭력 보도시 불법촬영물의 키워드, 사이트명 등의 정보를 제공해 손쉽게 해당 영상을 찾아낼 수 있게 하지 않았는지, 신기술을 활용한 범죄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해 모방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았는지 등의 유의사항도 반영했다.

이번 가이드라인 제작에 참여한 서울대 김수아 교수는 “취재 준비 및 취재, 그리고 후속 보도에 이르기까지 취재와 보도 전 과정에서 언론 종사자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접근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언론노조 김수진 성평등위원장은 “젠더보도가이드라인을 취재·보도·제작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제작했다”며 “언론노조 시민미디어랩과 함께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보도 현장 변화, 수정할 내용 등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젠더보도가이드라인을 온라인으로 배포하고, 향후 오프라인 형태로도 발행할 계획이다.

한편, 언론노조는 가이드라인 발간에 즈음해 3월 중 ‘성평등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 ‘젠더보도 가이드라인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언론인이 말하는 젠더 보도 실태’ 등을 포함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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