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신임 대법관과 강지원 변호사 부부

추천후보 3명 모두 여성 '첫 대법관' 탄생 필연

“상대방 있는 그대로 인정” 평등부부 철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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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태 기자 leephoto@>

7월 23일 대법원장의 임명제청 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8월 25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음으로써 헌정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8월 25일 주인공 김영란(48·사시20회·전 대전고법 부장판사) 대법관과 그의 남편이자 초대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으로 널리 알려진 강지원(54·사시18회) 변호사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날은 마침 김 신임 대법관이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고 대법관으로서 6년 임기의 첫 근무를 시작한 날이었다.

김영란 신임 대법관은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고 보니 이제부터 차분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는 일성으로 그 동안의 감회를 대신했다.

그는 언론과 인사청문회에서 시민단체 추천인사로 부각됐던 점을 의식한 듯 “인사청문회 자료에서도 밝혀졌듯이 최종영 대법원장은 임명제청자문위원회에 3명의 대법관 후보를 추천했는데, 그들의 기수로 미루어 이영애 전 춘천지법원장, 전수안 서울고법 부장판사 그리고 나 이렇게 3명 모두 여성 법조인인 것으로 추측됐었다”며 자신이 아니더라도 결국 신임 대법관은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필연성을 강조했다. 여성 판사의 수가 13%에 이르는 상황에서 “여성 대법관이 탄생할 시대가 됐다”는 공감대가 이미 법조계 안팎에서 강하게 형성됐다는 것.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보호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김 대법관은 여성 대법관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남성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감수성이 소수 감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로 피력했다.

그는 “남성이 다수인 조직에선 남성 중심적 사고 때문에 고의적이라기보다는 의식하지 못해 편견이나 차별을 문제 있다고 생각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다수를 설득할 여지는 많으며, 여기에 바로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써 대법원에 양성평등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여성 감수성이 많이 반영돼야 할 법적 사안으로 형사소송에선 부부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 관련 소송, 민사소송에선 부부 공동 재산분할과 양육비 관련 소송을 꼽았다.

동석한 남편 강지원 변호사는 아내의 대법관 임명제청 직후부터 '외조 전념을 위해'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직 사퇴와 함께 일체의 시사방송프로그램 진행도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그는 대법관으로서의 아내의 여정을 “(산더미 같은 재판기록에 포위돼) 좋게 말하면 성직자 생활, 나쁘게 말하면 징역살이”라고 비유할 만큼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청와대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외조가 화제에 오를 만큼 평등남편으로 정평이 나있는 강 변호사는 스스로를 '짝사랑형 페미니스트' 혹은 '왕따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모친과 딸 둘, 아내로 이루어진 여성 절대 다수의 가족 분위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페미니스트적 성향은 필연적이라는 설명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성매매 피해여성 집단소송이나 일명 '단지엄마'로 불리는 성폭력 피해아동 부모소송 등 여성인권 소송을 맡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잘 알려져 있듯이 강 변호사와 김 대법관은 강 변호사의 서울지검 근무 당시 김 대법관이 옆방 검사시보로 오면서 결혼에 이르게 됐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김 대법관은 강 변호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서울 법대 2학년 재학 당시 고시를 준비하던 김 대법관은 수석합격자로 고시잡지에 수기를 실은 강 변호사의 글을 읽고 '훌륭하다'는 생각을 이미 했다는 것. 이후 강 변호사는 그 잡지에 고시생들을 위한 시험요령을 연재했고 김 대법관은 사시에서 그 덕을 톡톡히 봤다. 그래서 지금도 강 변호사는 아내에게 “내가 사시에 합격시켜줬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김영란 대법관과 강지원 변호사 부부가 말하는 평등부부의 철학은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수직적 지배적 사고와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격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해야 성취감을 느끼는 것 말이다. 그러나 노력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평등부부로 가는 제1원칙일 것이다. 상대방을 자기 스타일로 억지로 꿰맞추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의 교육도 마찬가지지만 각각의 스타일과 개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김영란 대법관이 말하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 조배숙 의원과의 학창시절

김영란 신임 대법관은 알려진 대로 경기여고부터 서울 법대에 이르기까지 강금실 전 법무장관, 조배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동기로 트로이카를 이루었다. 특히 강금실 전 장관과는 문학과 음악을 공통으로 좋아해 기질, 정서 면에서 많이 맞았다. 강 전 장관은 최근 김 대법관을 만난 자리에서 “장관에서 물러났는데 친구가 대법관이 되니 참 좋다”는 축하를 해왔다고.

“당시 법대 건물은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강금실 전 장관과는 학교 입구에서 만나 서로 애창 시를 외우며 법대까지 걸어 올라가곤 했다. 강 전 장관은 끝까지 정확히 시를 외우곤 했지만 난 시를 그대로 읊기보다 뉘앙스만 기억하는 편이어서 시적이라기보다는 산문적인 사람이구나, 혼자 생각하곤 했다(웃음)”

김 대법관은 좋아하는 국내 작가론 소설 '토지'의 박경리, 시인 기형도 이성복 황동규 정현종 김수영(여성) 등을, 국외 작가론 도스토예프스키 등을 꼽았다. 음악가로는 바하와 브람스를 좋아한다고.

“활달하고 사회의식이 강한 데다가 무서운 집중력을 지녔다”고 기억하는 조배숙 의원은 도서관에서 그를 주눅들게 한 친구로 기억된다. 자신은 공부 짬짬이 음악도 듣고 때론 화장실도 들락거렸지만 조 의원은 식사시간 외에는 거의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로 인내력이 놀라워 콤플렉스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는 것.

“조배숙 의원이 그 힘든 지역구 의원에 당선된 것을 보니 당시 도서관에서 그가 보여준 뚝심과 강한 목표의식이 새삼 연상됐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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