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철
ⓒ오재철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인, 2043년에서 왔습니다. 제겐 28살 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 만나랴, 연애하랴, 사회초년생으로서 살아남느라 늘 바쁜 딸아이입니다. 제 인생을 제법 잘 헤쳐나가는 다 큰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흐뭇한 일이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엔 내심 서운함이 느껴집니다. 퇴근하는 이 아빠와 놀기 위해 대문 앞에 앉아 목 빠지게 기다리던 그 시절 어린 딸아이의 눈빛이 새삼 그립습니다. 이제는 아빠 보다 딸이 바쁜 시절이 되었거든요.

그렇게 지난 날을 상기하며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2023년으로 돌아온 겁니다. 어리둥절해 있는데, 아침밥을 먹으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함께 뒹굴던 8살 딸아이가 품으로 파고드네요. 나어린 딸아이의 향긋한 체취가 너무도 생생하게 코끝에 닿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엔 특별함이 하나 없는데, 아내와 아이가 까르르 웃습니다. 젊어진 제 자신에 대한 반가움 보다 그리웠던 20년 전 그날의 재현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8살 딸아이가 마당에서 저를 부릅니다. 작은 공 하나를 서로 주고받습니다. 예전에는 딸아이와 하는 이 공놀이가 그리 흥미롭지 않았는데, 이번엔 무척이나 재밌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이토록 사소한 일상이 20년 후엔 너무도 그리운 하루가 되리란 것을요. 왜냐하면 저는, 미래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딸아이가 공을 내려놓고 저에게 달려오네요. 두 팔을 벌려 저를 힘껏 안아줍니다. 저도 아이를 꼭 안습니다. 제가 아이의 품에 안긴건지, 아이가 제 품에 안긴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딸아이의 따스한 체온이, 지금의 이 행복이 꿈이 아니란 것을 알려줍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아내까지, 온가족이 웃으며 마주합니다. 생각해보니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일상이 저에겐 너무나 특별합니다. 왜냐면 저는 미래에서 왔으니까요.

2023년, 현재 딸아이와 함께 하는 일분일초가 정말 소중합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들이 저에게 너무도 소중합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상이 반복되겠지요? 전 그 반복을 매일같이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20년 후 바로 이 하루하루를 얼마나 그리워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재철 여행·사진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해 상업사진가로 일한 오 작가는 저서 『함께, 다시. 유럽』, 『꿈꾸는 여행자의 그곳, 남미』,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을 펴냈다. 
오재철 여행·사진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해 상업사진가로 일한 오 작가는 저서 『함께, 다시. 유럽』, 『꿈꾸는 여행자의 그곳, 남미』,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을 펴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