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피=AP/뉴시스] 1일 새벽(현지시간)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쪽 템피 인근에서 화물열차와 여객열차가 충돌, 탈선과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과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템피=AP/뉴시스] 1일 새벽(현지시간)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쪽 템피 인근에서 화물열차와 여객열차가 충돌, 탈선과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과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스 열차 충돌 사고 사망자가 57명으로 늘었다.

복선 철로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다.

외신들은 구제금융으로 투자가 제한되면서 시설이 뒤떨어진데다 만성적인 인력난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 악몽의 10초

'악몽의 10초'였다.

올해 28세인 스테르지오스 미네니스는 BBC에 "큰 폭발음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서진 객차에서 뛰어 내렸다.

미네이스의 앞 열차는 모두 파괴됐다. 

"객차가 뒤집히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승객들은 공포속에 비명을 질렀다". 미네니스는 객차 사방에 불길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10초~15초 사이에 객차는 악몽으로 변했다.

스카이TV는 일부는 운 좋게 탈출할수 있었지만 다른 일부는 화염에 휩싸인 열차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승객들은 자신의 몸이나 화물로 창문을 자신의 몸이나 화물로 부수고 불타는 객차에서 빠져 나왔다. 

앙겔로스 치아무라스는 그리스 방송 ERT와의 인터뷰에서 "충돌 순간 지진이 난 것처럼 느꼈으며 여행가방으로 창문을 부수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다른 승객은 "우리는 등으로 창문을 깼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자정 직전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쪽으로 380㎞ 떨어진 중부 템페 인근에서 여객열차가 마주오던 화물열 차와 정면 충돌했다. 열차 여러 량이 탈선하고 최소 3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57명으로 늘었다.

여객열차에 탑승한 350여명의 승객 중 상당수는 그리스 정교회 사순절을 축하하는 긴 주말을 보낸 뒤 테살로니키로 돌아가는 20대 학생들이었다.

◆ 왜 두 열차는 마주보고 달렸을까? 

템피=AP/뉴시스] 1일 새벽(현지시각)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쪽 템피 인근에서 화물열차와 여객열차가 충돌, 탈선과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과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 사고로 최소 40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템피=AP/뉴시스] 

여객열차는 수도 아테네에서 출발해 그리스 제2 도시 테살로니키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고, 화물열차는 북부 테살로니키에서 남쪽을 향해 중부 라리사로 가고 있었다.

사고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충돌 직전 강한 제동을 느꼈고 선로에서 불꽃이 튀었다고 전했다. 곧바로 열차가 멈췄다.

그리스 철도노조 위원장은 열차들이 충돌 전 최소 12분 동안 서로를 향해 질주했다고 말했다. 두 열차는 복선 철로의 같은 선로에서 마주보고 달리다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다.

두 열차 기관사는 사망했다.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은 알수 없다.

현지 경찰은 당초 "라리사 역장이 여객열차 기관사에게 선로 변경을 잘못 지시해 두 열차가 같은 선로를 운행하면서 충돌한 것"으로 판단했다.

사고 후 라리사 역장은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고 있으며 기술적인 결함 때문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철로를 따라 있는 전자 감시 및 경고 시스템은 부분적으로 예산 문제 때문에 그리고 부분적으로 시스템이 완전히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발적으로만 작동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철도 노조 위원장은 인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라디오 ENA와의 인터뷰에서 철도망의 근로자 부족을 언급하며 전국적으로 2,000명 이상의 직원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750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 철로는 수동으로 조정한다. 코스타스 게니도니아스 기관사협회장은 ERT에 "지시등도, 신호등도, 전자교통통제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것들이 작동했다면 운전자들은 빨간 신호등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기차들은 서로 500미터에서 10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안전하게 정차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유럽 철도청은 2022년 보고서는 그리스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유럽 대륙 28개국 중 100만 km당 철도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 중 상당 부분은 그리스 철도의 열악한 시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다음날 사임한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그리스 교통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그리스 철도 시스템은 21세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철도 안전에 관한 보고서에서 이른바 '열차 보호 시스템'이 "열차 간 충돌 위험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철도 안전 조치 중 하나로 널리 고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철로에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보고서는 그리스가 유럽연합 국가 중 유일하게 그러한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 아테네·테살로니키 격렬한 항의 시위

열차 충돌 사고가 일어난 이튿날인 1일(현지시각) 시민들이 아테네 헬레닉트레인 본사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알자지라 TV 화면 갈무리
열차 충돌 사고가 일어난 이튿날인 1일(현지시각) 시민들이 아테네 헬레닉트레인 본사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알자지라 TV 화면 갈무리

충돌사고가 난 이튿날이었던 1일(현지시각) 아테네의 헬레닉 트레인 본사 앞에서 열차 사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헬레닉 트레인은 사고 열차가 소속된 그리스의 주요 철도 회사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 2000여명은 명백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촛불을 들었다. 일부 시민이 돌을 던지는 등 분위기가 격화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명령했다.

그리스 철도노동조합은 "정규 인력 채용, 더 나은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대적인 안전 기술"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요구를 이유로 하루 동안 파업을 벌였다 노조는 이런 제안들이 항상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고 주장했다.

2일 오후(현지시각)에도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있는 헬레닉 트레인 본사 앞에서 700여의 시민이 모여 노후한 철도 시스템을 방치해 참사를 초래한 정부와 철도 회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시위대는 헬레닉 트레인 본사에서 의회까지 행진하면서 "이 범죄는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원들은 다수의 희생자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가 대부분이었다.

시위에 참여한 스트라스 난티스는 "우리는 정부와 철도 회사가 그리스 철도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사고 현장을 방문해 명확한 원인 파악을 주문한 뒤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철도 참사”라며 “인간의 실수에 따른 비극적인 사고”라고 밝혔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교통부 장관은 “억울하게 숨진 이들을 향한 최소한의 추모와 존중의 표현”이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리스 정부는 오는 3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모든 공공건물에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몰도바를 방문 중이던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 대통령은 “국민 곁에 머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겠다”며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 구제금융이 낳은 비극

헬레닉 트레인 열차 ⓒ헬레닉 트레인 홍보영상 갈무리
헬레닉 트레인 열차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번 사고의 근본적 배경으로 만성적 인력 부족과 안전 관련한 최소한의 자동화 시설 미비 등 부실 관리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의 철도망은 오랫동안 부실 관리, 부실한 유지보수, 구식 장비, 부실 서비스로  지연으로 악명이 높았다.

코스타스 게니도니아스 기관사협회장은 "2000년 이후 전자(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수동으로 열차를 운행했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철도망은 2552km에 이른다. 그리스는 2017년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으며 추진한 구조개혁의 하나로  철도를 민영화했다. 이탈리아의 공기업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 이탈리아(FS)는 4800만 달러(631억원)에 그리스 국영 철도 운영사인 트라노세를 인수했다. 그리스의 채권자들은 민영화 이후 그리스 열차(Hellenic Train)로 이름을 바꿨다.

EU와 IMF는 1100억 유로를 지원하는 대가로 그리스에 혹독한 재정 긴축을 요구했다. 공공 부문의 고용과 임금을 줄이고 사회복지 지출을 대폭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컨설팅 회사 PwC는 그리스와 관련된 보고서에서 2009년부터 2019년 사이에 그리스가 기반시설에 지출한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유럽연합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열차 사고였다. 이전에는 34명의 목숨을 앗아간 1968년 펠로폰네소스 남부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가 그리스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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