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김태수 대림아크로빌 노인회 회장
"나눔은 내 생명을 살리고 봉사는 내 영혼을 살린다"
"어머니에게 배운 근검절약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김태수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입주자 대표 회장 ⓒ홍수형 기자
김태수 대림아크로빌 노인회 회장 ⓒ홍수형 기자

30년 된 낡은 지갑을 들고 다니는 김태수(78) 씨. 동대문시장에서 원단 사업으로 큰돈을 번 그가 현금 5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 2월, 1억원 이상 개인기부자들 모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그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국방부, 카이스트 등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노인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김씨는 11년간 이곳 입주자 대표로 ‘근검절약의 왕’이라 불릴 만큼 알뜰하게 생활했다. 기부는 김 회장에게 익숙한 일이다. 경로잔치, 주민잔치, 환자 수술비 지원, 장학금 지원, 구청 기부 등 다양한 기부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는 사재를 털어서 시설을 개선하고, 아파트단지를 꼼꼼히 살펴왔기 때문이다. 현재는 노인회 회장을 맡고 있다.

“나눔은 내 생명을 살리고 봉사는 내 영혼을 살린다”고 말하는 김 회장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와 기부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자수성가한 여성 사업가로서 재산을 어떻게 모을 수 있었나.

“운이 좋았다. 스물여덟살부터 40년 동안 섬유 사업을 했다. 원단 장사로 시작해서 나염공장도 하고 몽탁, 맥그래이, 저지 원단도 내가 만들었다. 당시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막 일어날 때라서 수요가 많았다. 내 제품을 사 가려는 사람이 줄을 섰고 없어서 못 팔았다. ‘돈을 쓸어 담았다’는 표현대로 돈을 많이 벌었다. 당시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에서 섬유 쪽 사람들에게는 김태수가 제일 돈 많은 사람으로 통했으니까.”

-모은 돈은 어떻게 관리하셨나?

“일단 안 썼다. 1만원을 벌면 500원 쓰고 9500원을 모았다. 지금도 지갑을 30년째 수선해가며 쓰고 있다. 우리 집 거실에는 브라운관이 있는 뚱뚱한 소니 텔레비전이 20년 넘게 놓여있다.

밥 먹을 때도 오륙천원 짜리 김치찌개를 주로 먹는다. 기부하거나 아파트 시설 고칠 땐 아낌없이 쓰지만, 나를 위한 것에는 최대한 절약하는 게 습관이다.

재산이 모이면 보험회사에서 고정금리 연금보험을 들었다. 땅, 건물을 최고의 자산으로 알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애물단지 아닌가? 나는 무조건 현금 중심으로 재테크를 했다. 주식투자도 많이 했다. 수많은 공모주를 샀고, 거래할 때마다 수억원씩 벌었다.”

-여성 사업가 1세대로서 어려울 때는?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어렵고 서러울 새도 없었다. 전국각지에서 원단 사러 오는 사람들로 사업장이 항상 북적였고 돈 모으는 재미로 살았으니까. 문제는 해결하면 되는 거지 그걸로 고민하고 좌절하지 않았다.

사업의 성공비결이 있다면 단순하다. ‘직접 발로 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리어카도 끌고, 자전거 배달도 하고 박스도 날랐다. 원단 일일이 만져보며 확인하고 발품 팔았다. 도소매업을 겸했고 우리 원단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사장이었지만 직원과 똑같이 몸으로 뛰었다.”

-최근 500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어떻게 거액을 기부할 수 있었나?

“평생 일하고 절약해서 모은 재산을 값어치 있는 일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 사람이다. 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부는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나눔은 내 생명을 살리고 봉사는 내 영혼을 살린다. 내 재산이 우리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물려주는 데에 잘 쓰이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기부를 해오셨다.

“모든 기부가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다. 백내장 수술 지원, 암 환자 수술 지원, 청소년 장학금 지원, 경로잔치, 동민축제 지원 등 다 열거할 수 없다. 강남구청에도 매년 1억씩 기부했다. 모두 3년이다. 강남이 부촌이라고 해도 경제적 사각지대가 있다. 돈이 없어서 백내장을 치료 못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파 안과를 통해 150여명의 수술비를 지원했다.

경로잔치는 1980년쯤부터 매년 해왔다. 2016년 도곡동주민센터에서 어르신 사오백명 모시고 했던 경로잔치가 기억난다. 고인 되신 송해, 송대관, 장광팔씨 등 유명한 연예인이 참석했다. 어려울 때도 경로잔치는 좋은 음식에 즐거운 잔치가 되도록 지원했다. 코로나 3년간을 제외하고 근 40년 이상을 지속해왔다.” 

ⓒ여성신문, 강남구
ⓒ여성신문, 강남구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경로잔치를 해왔다. 우리 어머니에게서 근검절약을 배웠다. 어머니는 이북에서 1951년 1·4 후퇴 때 피난 와서 아들 다섯, 딸 둘 칠 남매와 남편 시동생들까지 12명을 돌보는 살림을 해내셨다. 어머니는 정말 아끼고 또 아끼면서 살았다. 자식들이 신어서 다 낡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매어서 어머니가 신으셨다. 윗목만 남아있는 양말이 어머니 몫이었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자라 지금도 나를 위해 비싼 물건, 좋은 물건 사지 못한다. 지금껏 30만원 넘는 옷 한 벌 사본 적 없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근검절약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대림아크로빌 입주자 대표를 맡아 활약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게 이상해서 들여다보니 문제가 있었다. 용역비, 비품구입비 등 낭비 요소가 많았다. 정보공개를 통해 공금 유용 사실을 발견했고, 관리비 내역도 낭비 없도록 손봤다. 새벽부터 창고의 비품 잔고도 매일 매일 직접 기재하는 등 꼼꼼하게 살폈다. 대표 재량권으로 주어지는 업무추진비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가구당 월 관리비는 몇십만원 이상 줄였다. 자신의 사비 1억 3000여만원을 들여 아파트 공동시설을 수리했다. 2012년 에너지관리공단에서 5000만원 포상금도 받았고, 2017년에는 강남구청에서 관리비 절감 우수단지로 선정돼 최우수상 4000여만원, 2018년도에 우수상 3400여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김태수 회장은 새벽부터 아파트 단지를 꼼꼼히 돌아보며 관리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낙후된 시설을 보수할 때 전액 사비로 충당한 일도 유명하다. 주민들이 내던 설날 떡값도 코로나19로 힘들다고 했을 땐 대신 내기도 했다. ‘대단한 여성 회장님 덕에 살기 좋다’는 얘기가 돌았다.

-일과는?

“새벽 5시에 일어나면 경제 공부를 서너 시간 한다.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디에 투자해야 좋을까 공부하는 데에 두 시간 정도 쓴다. 다음에는 내 취미에 관련된 공부를 한다. 취미로 노래교실을 다닌다.”

지인들은 그가 한번 본 악보는 그대로 외운다고 했다. 사진기와 같은 기억력이 사업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젊은 세대에게 전할 말씀은.

“내가 사업할 때는 노력한 만큼 재산을 모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경쟁이 너무 심해서 뭘 해도 어려운 시대다. 그래도 큰 포부를 품고 행동하다 보면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김태수 회장을 말한다

김준형(75. 노인회 총무) : 여성들의 롤 모델이다. 사업능력과 함께 체력관리 마음관리에서도 본받을 점이 많다. 본인은 근검절약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기부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하필연(74. 입주자): 자신을 믿고 헤쳐 나가면 여성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분이다. 나눔과 봉사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우리시대의 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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