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대 신교수 사건부터 서문과 A교수 사건까지
학계 내 막대한 권위 원인… 취업난으로 영향력 더 커져

24일 서울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심미섭 씨는 서울대학교 성폭력 전수조사를 요구하기 위한 1인 시위를 했다. ⓒ우지안
지난 2월 24일 서울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심미섭 씨는 서울대학교 성폭력 전수조사를 요구하기 위한 1인 시위를 했다. ⓒ우지안

A, B, C … 서울대에서는 알파벳이 모자랄 만큼 교수 성폭력 사건이 빈번히 고발되고 있다. 학내에서도 교수 성폭력을 규탄하고 이를 해결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월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졸업식. 이날 석사과정을 졸업한 심미섭씨가 1인시위에 나섰다. 학내 교수 성폭력 전수조사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든 피켓에는 ‘자연대 신교수, 자연대 K교수, 경영대 P교수, 사회학과 H교수, 수의대 H교수, 서어서문학과 A교수, 음대 B교수와 C교수’ 등 지금까지 서울대에서 공론화됐던 교수 성폭력 사건들이 적혀있었다. 국내 최고 학문의 전당이라 불리는 서울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관련 기사: "서울대 교수 성폭력 전수조사 하라" 졸업식서 1인 시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10/0000104376?sid=102

신교수 사건 : 한국 최초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

심씨가 언급한 자연대 신교수 사건은 지난 1993년 신모 교수가 여성 조교를 성추행 해 고발당한 사건이다. 한국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제기된 역사적 사건이다. 당시 성희롱이 성폭력의 일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어있지 않았던 시기였다. 원고(피해자)가 패소했던 2심 판결문에는 ‘성희롱 개념을 도입하면 남녀관계를 적대적인 경계의 관계로만 인식하여 그 사이에서 일어난 무의식적인 또는 경미한 실수를 모두 법적 제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6년 간의 지난한 법적 투쟁 끝에 신 교수가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성희롱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정착이 되는 사건이었다. 

‘제자 성추행 의혹’ A교수 사건 : 인권센터는 정직, 1심은 무죄

서어서문학과 A교수 사건은 아직 다툼이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은 A 전 교수의 지도학생이었던 B씨가 2015년과 2017년 페루와 스페인에서 3차례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 신고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조사 끝에 인권센터 측은 A 전 교수의 정직 3개월 처분을 권고하자 B씨는 2019년 2월 실명을 걸고 피해를 밝히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후 학생들은 A 전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기 시작했고, 2019년 8월 A 전 교수는 교원 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라 해임 처분을 받았다. 

2022년 6월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무죄로 평결했고, 재판부도 배심원단 평결을 받아들여 A 전 교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서울대 정문으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대에서 교수 성폭력 사건이 빈번히 고발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학계 내 막대한 권위 원인… 취업난으로 영향력 더 커져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교수의 영향력 혹은 권위가 막대하다는 것이 꼽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로 인해 교수, 학교, 학계, 전공 분야로부터 배제돼 향후 진로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나 두려움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물론 동료 교수들에게 지속해서 폭언과 성추행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은 서울대 사회학과 H교수 사건의 경우,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와 경쟁·성과 위주의 평가 방식을 따르라는 요구가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극심한 취업난으로 대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과제’(2018)에서 대학 내 평가에 따라 이후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염려가 대학 공동체 대 불평등한 관계를 더욱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학계의 ‘적자’ 재생산 구조도 권력형 성폭력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꼽힌다. 유현미는 자신의 논문 ‘성차별적 위계구조의 담장 넘기’(2018)에서 대학원에서 진학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로 “대학(원)은 교수들의 봉건제 신분사회이자 봉건 영지를 둘러싼 적자들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라 말했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H교수 사건을 분석하면서 모든 피해자가 (서울)대학교와 학계에서 취약성의 지표로 여겨지는 요소, 즉 여성이거나 다른 대/다른 학부 출신, (여성의 경우) 기혼 등을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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