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성적 지향 차별은 불평등”
1심과 같이 ‘사실혼’은 불인정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사는 동성 배우자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소송을 제기했던 소성욱·김용민씨 부부는 선고 후 “사랑이 이겼다”는 소감을 밝혔다. 

“주문.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2020년 11월 23일 원고에 대하여 한 보험료 부과처분을 취소한다.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2023년 2월 21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제 1-3 행정부(부장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는 이같은 세 문장으로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지위를 박탈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소송 당사자인 김용민·소성욱 부부와 대리인단, 그리고 항소심 선고를 함께 지켜보기 위해 대법정을 가득 메운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만 2년의 긴 싸움 끝에 받아 낸 승리 앞에 축하하고 환호했다.

재판부는 소씨와 김씨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사실혼 관계와 다르지 않으므로, 건보공단이 소씨를 김씨의 피부양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이성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 관계인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동성 커플)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대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법령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음에도 피부양자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이성의 ‘사실혼 배우자’와 소씨과 같은 ‘동성결합 상대방’은 배우자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판단했다.  

소씨와 김씨는 이날 선고 후 “저희 둘만이 아닌 동성 부부들의, 그리고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승리”라고 말했다.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앞서 소씨는 동성인 김씨와 2019년 5월 결혼식을 올렸지만, 혼인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소씨는 건강보험에 직장가입자인 배우자 김씨의 피부양자로 대상에 해당하는지 문의를 통해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다. 그러나 소씨 부부에 대한 언론 보도 이후 건보공단은 “피부양자 인정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며 소 씨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전환하고 보험료를 부과했다. 소씨 부부는 “성별을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동성인 둘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려우므로, 공단의 보험료 부과 처분은 적법하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사실혼은 혼인 의사의 합치, 부부 공동생활이라 할 만한 혼인 생활의 존재를 요건으로 한다”며 “동성 간의 결합까지 확장하여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이날 논평을 통해 사법부가 동성 부부의 평등한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을 환영했다. 이들 단체는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 많은 동성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들은 자신들이 꾸린 관계를 공적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며 “두 사람이 꾸린 삶의 실질이 이성 부부와 다르지 않음에도 배우자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혼인제도에 원천적으로 진입할 수 없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제도적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부와 행정부를 향해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시정하고, 평등한 가족구성권 보장,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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