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예능 ‘피지컬: 100’ 속
다채로운 ‘운동하는 여성의 몸’
‘여자는 근육도 예뻐야’ 편견 깨

운동 예능도 ‘기울어진 운동장’
여성 참가자 23명...30%도 안 돼
남성보다 평가절하·약체 취급도
용맹한 도전·상호존중 보여준 여성들에 박수를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티저 이미지. 강하고 단단하고 날쌘 여성들을 보는 재미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티저 이미지. 강하고 단단하고 날쌘 여성들을 보는 재미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이토록 다채로운 ‘운동하는 여성의 몸’을 국내 방송에서 본 적 있었던가. 인기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이 반가운 이유다. 강하고 단단하고 날쌘 여성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시청자가 많다.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가리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 등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춘 100인이 참여했다. 축구장 2개 규모의 세트에서 근지구력, 순발력, 밸런스 등을 요하는 다양한 퀘스트(미션)에 도전한다.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TV쇼(비영어) 부문에서 한국 예능 사상 최초 1위, 80개국 TOP10에 올랐다. 지난 21일 최종화가 공개됐다. 

여성 참가자는 100명 중 23명. 소수여도 존재감은 뚜렷했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여성 출연자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여성 출연자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서 단체전에선 여성으론 유일하게 팀장을 맡은 레슬링 국가대표 장은실 선수.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서 단체전에선 여성으론 유일하게 팀장을 맡은 레슬링 국가대표 장은실 선수. ⓒ넷플릭스 제공

레슬링 국가대표 장은실 선수가 대표적이다. 일대일 대결에선 특전사 여군 출신 ‘깡미’를 여유 있게 제압했다. 단체전에선 여성으론 유일하게 팀장을 맡아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엄청난 근력을 요하는 ‘1.5톤 배 끌기’ 경기에서도 놀라운 팀워크를 보여줬다. 장은실 등 여성 4명, 부상자 1명이 속한 연합팀은 ‘최약체팀’으로 지목당했으나, 상대 팀과의 기록 차이는 겨우 약 2분에 지나지 않아 화제에 올랐다.

여성 참가자가 남성을 모래판 위 일대일 대결 상태로 지목하기도 했다. 씨름 박민지 선수는 럭비 장성민 선수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록 최종 대결에선 패배했지만, 빈틈을 노려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남성을 모래판 위로 넘어뜨리고, 끊임없이 기술을 시도하며 분투해 박수를 받았다.

‘필라테스 대가’, 심으뜸 스포츠 트레이너 겸 운동 유튜버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성 참가자들 가운데에서도 작고 마른 몸, 어쩐지 ‘과격한’ 운동엔 능하지 못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깨고 소리 없는 강자로 떠올랐다. 특히 자기 몸무게의 약 40% 무게에 달하는 토르소를 밧줄로 매달아 붙잡고 버텨야 이기는 패자부활전에선 여성으론 유일하게 최후의 5인에 들었다. 

심으뜸 스포츠 트레이너 겸 운동 유튜버는 자기 몸무게의 약 40% 무게에 달하는 토르소를 밧줄로 매달아 붙잡고 버텨야 이기는 패자부활전에서 여성으론 유일하게 최후의 5인에 들었다.  ⓒ넷플릭스 제공
심으뜸 스포츠 트레이너 겸 운동 유튜버는 자기 몸무게의 약 40% 무게에 달하는 토르소를 밧줄로 매달아 붙잡고 버텨야 이기는 패자부활전에서 여성으론 유일하게 최후의 5인에 들었다.  ⓒ넷플릭스 제공

작은 체구로도 날쌔고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 스턴트우먼 김다영, 한국 여자복싱 강자인 WBC 슈퍼페더급 챔피언 신보미레 선수, 크로스핏 서하얀·황빛여울 등도 개인전과 팀플레이를 오가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 최초 여자 권투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 리우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정보경, 씨름 선수 이다현 등도 관록과 패기를 보여줬다.

‘여성의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여성들도 다수 출연했다. 동북아 최초 여성 보디빌딩 오버롤(체급 통합 우승) 기록을 쓴 김춘리를 포함해 김은지, 미호, 송아름, 안다정 등 여성 보디빌더들은 다부진 근육과 체력을 자랑했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중 일대일 대결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중 일대일 대결 장면. ⓒ넷플릭스 제공
(왼쪽에서 두 번째) WBC 슈퍼페더급 챔피언 신보미레 권투 선수는 남성들 사이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모습으로 박수를 받았다. ⓒ넷플릭스 제공
(왼쪽에서 두 번째) WBC 슈퍼페더급 챔피언 신보미레 권투 선수는 남성들 사이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모습으로 박수를 받았다. ⓒ넷플릭스 제공

운동 예능도 ‘기울어진 운동장’
여성 참가자 23명...30%도 안 돼
남성보다 평가절하 약체 취급해
용맹한 도전·상호존중  보여준 여성들에 박수를 

‘운동하는 여자’가 뜨는 시대에도 ‘여자는 근육도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여전하다. 과격한 운동, 근력과 체력을 강조하는 운동은 남성의 영역이다. 그러한 운동을 수행하는 여성은 유별난 존재로 취급받는다. ‘애플힙’, ‘황금 골반’, ‘꿀벅지’라면 몰라도, 강한 어깨·팔뚝, 두꺼운 코어, 탄탄한 종아리를 지닌 여성은 ‘남자 같은 여자’라는 놀림이나 비하를 당하기 일쑤다. 

동시에 ‘운동하는 여성’은 여전히 타자이고 주변인이다. 아무리 두각을 나타내도 결코 남성과 동등한 선상에서 봐주질 않는다. 프로 선수들도 성차별을 호소한다.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둬도 ‘여성들끼리의 경쟁’으로 평가절하되는 일이 흔하다.

예능은 현실의 거울이다. ‘피지컬: 100’에도 여성의 몸과 운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일대일 대결에서) 같은 남자와 맞붙으면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 여자를 뽑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남성 참가자, 여성과 남성이 대결할 때마다 빠지지 않던 “(남자가) 어떻게 여자랑 싸우냐”, “쪽팔리게 여자한테 질 수 없다”는 남성들의 반응, 여성들이 많은 팀이란 이유로 승부를 겨루기도 전에 ‘최약체’로 지목하는 분위기가 그랬다.

애초에 여성 참가자 수가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완력을 강조하는 경기가 대다수였던 점도 이 프로그램이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좀 더 다양한 신체 능력과 잠재능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판을 짰다면 어땠을까. “성별, 나이, 인종 등 구분 없이 ‘완벽한 몸’”에만 집중하겠다는 제작 의도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뛸 수밖에 없어도, 용감하게 도전에 나선 여성들이 거침없이 질주하고, 기합을 내지르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경기가 끝나면 서로를 다독이고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더 다채로운 ‘운동하는 여성의 몸’을 더 많은 방송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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