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직접 콜센터 상담사 8개월 겪어보니]
출근 첫 날 받은 콜수 120건, 4분에 1건 처리
상담사 3분의 2는 업무 질환·절반은 자살 생각

영화 ‘다음 소희’의 배경인 2016년 콜센터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내가 콜센터에서 일하던 2020년에도, 7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하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영화 ‘다음 소희’의 배경인 2016년 콜센터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내가 콜센터에서 일하던 2020년에도, 7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하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스무살 자취생활을 시작해 기자가 될 동안 18개 일터를 거쳤다. 건설현장부터 사무실까지, 모든 일터마다 각각의 문제가 있었다. 부당한 상황에도 말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회가 되면 그들 대신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기자가 됐다.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비극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하면서 특성화고 실습생은 물론 콜센터 상담사들이 겪는 열악한 처우가 대중에 알려졌다. 영화 속 2016년 콜센터의 모습은 내가 상담사로 일하던 2020년은 물론, 2023년인 지금도 여전하다.

2시간 만에 목 갈라져… “죄송하다” 말만 반복

2020년, 병역을 마치고 자취방을 구하자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였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겪은 기억에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사무직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관의 설명을 듣고서야 내가 하게 될 일이 콜센터 상담사임을 알게 됐다. 힘들다고는 들었지만, 아무렴, 사무직인데. 나 자신과 같이 사는 고양이를 먹여 살리려면 기어코 해내는 수밖에. 

첫 응대를 잘 마무리하고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근무 두 시간 만에 목이 쉬었다. 안내를 종료하고 상담내용을 기록하면 3초 안에 다시 전화를 받아야 한다. 퇴근 시간 즈음엔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듣다 못한 고객이 고생이 많다고 위로를 건넸다. 고맙다고 답할 힘도 없었다. 출근 첫날 처리한 문의 전화는 약 120건. 점심시간을 빼면 4분에 한 건을 처리한 셈이었다. 

고객 고함 잊으려 담배 한 모금… 여기는 ‘흡연 천국’

출근 이틀 차엔 극심한 두통을 맞았다. 육성으로 안내하는 상담사의 마스크는 금방 세균이 가득 차기 때문이다. 한 달이 안 돼 귀가 찢어져 피고름이 생겼다. 헤드셋의 장력이 마스크 고무줄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회사는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강화되자 콜센터 밖 식사를 금지했다. 잊을 만 하면 마스크 몇 장을 주고 일주일에 한 번은 도시락을 제공했다. 쥐꼬리만한 복지는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거리두기가 완화될 때까지 상담사들은 마스크를 빨아 쓰고 도시락을 챙겨와야 했다.  

40분에 걸친 고함을 끊어내지 못했던 날엔 담배를 피워볼까 고민했다. 상담사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직원들도 나처럼 담배를 찾았다. 콜센터 여성 상담사의 흡연율은 26.0%(2013년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여성 노동자 건강실태조사’)로 여성 평균인 6.2%(2014년 질병관리본부)보다 4배 이상 높다.  

답답한 고객이 화를 내도 상담사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잠자코 “죄송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하루는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상담사가 휴게실에 앉아있는 나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제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왜 계속 죄송하다고 빌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 책임자는 어디에 있는 걸까.

좀처럼 펜을 굴리지 못하던 그는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고객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상냥함을 놓친 한 상담사는 경위서를 낸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오래 일한 사람들 중 좋아서 남은 사람은 없었다

전화 소리 없이 조용한 자리엔 한 상담사가 경위서를 적고 있었다. 고객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상냥함을 놓쳐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상담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담사 징계가 가장 빠른 해결책일 뿐이다. 좀처럼 펜을 굴리지 못하던 그는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성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흘려들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꾹꾹 누른 채 일을 계속하자 세 시간 이상 못 자는 수면장애가 생겼다. 몽롱한 상태로 전화를 받다 졸거나 식욕이 떨어져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관리자는 내 컨디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내 메신저를 통해 “다른 팀들보다 응대율이 낮다”, “상담 기록 시간이 너무 길다”, “쉬려면 보고하고 쉬어라” 등의 압력만 넣을 뿐이다. 입맛은 없고 잠은 깨야 하니 점심 시간엔 커피만 마시고 남는 시간에 쪽잠을 자는 식으로 버티기 바빴다.

8개월간 일하며 대화를 나눈 상담사는 한 명밖에 없었다. 그는 혼자서 아들 둘을 키우려면 힘들어도 이곳을 계속 다녀야 한다고 넌지시 얘기했다. 콜센터 경력만 10년 넘는 팀장들도 남편과 자식들을 부양하느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하다 보니 남아있다고 말했다. 오래 일한 사람들 중에 일이 좋아서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담사 중 3분의 2가 업무 관련 질환을 앓고 있으며 48%는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3월 발표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담사 중 3분의 2가 업무 관련 질환을 앓고 있으며 48%는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다. ⓒ뉴시스·여성신문

3분의 2는 업무 질환, 절반은 자살 생각…누구도 버티기 힘든 근무환경

영화 속 콜센터의 근무환경은 보호가 필요한 학생은 물론이고 노하우가 쌓인 팀장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가혹하다. 이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담사 1990명 중 65%가 업무 관련 질환을 한번 이상 진단받았으며 47.6%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2018년 10월부터 시행됐지만, 상담사가 폭언·성희롱 등 감정노동을 겪는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사 결과 상담사들은 평균 주 1회 이상 감정노동을 겪고, 매달 폭언은 평균 11회, 성희롱은 1회 이상 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토록 상담사가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함에도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회사는 거의 없다. 직장 내 고충 처리절차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0%는 “없다”, 46%는 “설치되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고 답했다. 상담사 86%가 회사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폭언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영화 속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는 경찰관 유진은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나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라고 읊조린다. 다음 소희를 만들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스스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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