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섹슈얼리티, 그리고 팜므 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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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리'의 포스터

공포 영화의 단골 등장인물 팜므 파탈(Femme Fatal). 이들의 섹스 어필은 남성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자 죽음에의 초대장이다. 반면 정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팜므 파탈은 '정죄'란 화살을 피해갈 수 없다. 이 같은 호러물의 전형적 공식은 가부장 사회의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와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1976, 미국)는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딸에게 청교도적인 삶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질서의 또 다른 피해자인 엄마 아래 격리된 채 살아가는 주인공 캐리. 염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이 분노했을 때 그 능력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고 죄책감에 빠져든다.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문을 열어갈 즈음 학교에서 샤워 도중 피 흘리는 모습을 보인 뒤 더욱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된다. 우연히 댄스파티에 초대돼 최고의 커플로 뽑히는 기쁨을 맛보지만 그 순간도 잠시, 그의 머리 위로 돼지피가 쏟아지고 캐리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공포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캐리'는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공포 영화의 도식을 따르지 않고서도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심, 여성 혐오적인 시선이 가득 묻어나는 영화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공포스럽고 괴기스럽다. 여성의 월경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공포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두려움, 단죄가 드러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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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2' (왼쪽)와 '에일리언'의 여주인공들.
한편 공포를 조성하는 또 다른 소재는 비정상적인 영역에 속하는 '괴물'이다. 영화 '에일리언'(1987)에서 공포는 모성을 통해 재현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화를 통해 여성성, 모성에 대한 남성들의 혐오감과 두려움을 보여준다. '에일리언1'에서 여전사로 나섰던 시고니 위버는 '에일리언2' '에일리언3'를 지나며 인간, 남성에게 절대적 타자인 '외계'의 생물체를 임신한 '모성'적 존재가 된다. 그와 동시에 그는 기존의 여전사가 아닌 가부장제 사회의 '어머니'가 된다.

물론 모든 공포 영화에서 여성들이 이처럼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그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원초적 본능'(1992)에는 가부장제에 순종적이지 않은 팜므 파탈이 등장한다. 성적 욕망에 적극적인 팜므 파탈과 여주인공의 욕망은 남성에게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위협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이렇듯 공포 영화는 여성을 두 가지 방식으로 재연, 공포를 만들어 낸다. 여성주의 이론가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남성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어떤 대상과 분리를 열망할 때 그 대상을 역겹고 비천한 것으로 상정함으로써 그 대상과 거리 두기를 하는 감정인 '오브젝션(objection, 비천함)'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은 '아버지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여성, 모성을 비천한 대상에 두고 그와 분리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위치는 이러한 상징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는 그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참조·'씨네페미니즘의 이론과 비평'

임영현 객원기자

sobeit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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