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서 교통약자 전체로 확대 취지
성평등·역차별 관점에서 지속적 논란
여가부 폐지 흐름과 관련있나

서울시가 지난 6일 시의회에 발의한 ‘가족배려주차장‘이다. 서울시는 여성만 이용 가능했던 기존의 ‘여성우선주차장‘을 없애고 노약자, 임산부, 유아동반자까지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서울시가 지난 6일 시의회에 발의한 ‘가족배려주차장‘이다. 서울시는 여성만 이용 가능했던 기존의 ‘여성우선주차장‘을 없애고 노약자, 임산부, 유아동반자까지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서울시의 공공시설 주차장에 마련됐던 ‘여성우선주차장’이 사라진다. ‘여성우선주차장’ 자리에는 ‘가족배려주차장’이 들어선다. 

서울시가 ‘여성우선주차장’을 ‘가족배려주차장’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서울특별시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지난 9일 시의회 심의단계에 들어갔다. 

기존 안의 ‘여성’에서 임산부, 고령, 영유아 동반자 등 교통약자까지 이용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도색 작업을 위해 약 7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여성우선주차장’은 주차장 강력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는 여론이 일자, 서울시가 ‘여성 행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9년 도입했다. 흔히 ‘여성전용주차장’으로 불리지만 남성이 이곳에 주차했다고 해서 처벌받거나 과태료를 물지는 않는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처럼 어디까지나 권고와 배려의 차원이다.

도입 목적은 △주차장 강력범죄로부터 여성 보호 △임산부 및 영유아 동반 운전자 배려 △운전에 미숙한 여성 배려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 설치된 ‘여성우선주차장‘의 모습. ⓒ뉴시스
서울시 동대문구에 설치된 ‘여성우선주차장‘의 모습. ⓒ뉴시스

이 제도가 실제로 주차장 강력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꾸준히 의문이 제기돼왔다. 2015년 9월 충청남도 아산 차량 납치·살인 사건의 범인인 이길곤은 여성우선주차장에서 피해자를 물색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후에도 주차장에서 여성만을 노린 강력범죄는 이어졌다. 오히려 여성우선주차장 때문에 여성을 표적으로 삼기가 쉬워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임산부 및 영유아 동반 운전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도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서 비판받고 있다. 이 같은 조치가 육아는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편견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남성 양육자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운전에 미숙한 여성을 배려한다는 취지도 무색하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통계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은 2021년 기준 전체 운전자의 42%에 달한다. 하지만 전체 사고 건수 20만 건 중 남성 운전자가 낸 사고가 15만 건으로 80%를 차지하는 데 비해 여성은 20%인 약 4만6000건에 불과하다. 여성이 운전에 서툴러 사고를 더 많이 낸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다.

교통약자를 폭넓게 배려하기 위해 가족배려주차장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데는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2021년 기준 주차장에서 발생하는 강력 범죄 188건 중 70%가 성범죄(강간, 강제추행 등)로, 여전히 여성은 주차장에서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여성우선주차장’을 없애는 대신 어떤 대안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전환을 추진 중인 현 정부의 기조에 따라, 지자체는 부서명에서 ‘여성’을 지우고 관련 사업을 연달아 축소하고 있다. 젠더 기반 폭력 문제가 뒷전이 되는 건 아닐지 우려의 목소리가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곳곳에서 나오는 가운데, 향후 서울시의 정책 방향에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