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박미례 수성엔지니어링 회장
‘디지털 엔지니어링’ 개척한 CEO
20일까지 첫 개인전 ‘숨, 쉼’ 개최

박미례 수성엔지니어링 대표 ⓒ홍수형 기자
박미례 수성엔지니어링 대표 ⓒ홍수형 기자

검은 갯벌 사이로 하얀 물길이 나있다. 바닷물이 빛을 받아 반짝하고 빛난다. 언뜻 죽은 땅처럼 보이는 갯벌에는 수천, 수만 개의 생물이 터를 잡고 숨을 내뿜는다. “갯벌의 생물들이 숨을 내뿜고 있고 갯벌 사이 물길도 꼭 ‘숨’이라는 글자 같았어요.” 박미례 수성엔지니어링 회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작품을 설명했다. 충남 당진의 갯벌을 담아낸 이 사진의 제목은 ‘숨’이었다.

5년 넘게 사진을 찍고 공부한 박미례 회장이 첫 개인전 ‘숨, 쉼’을 개최했다. 그룹전은 여러 차례 참여했으나 오롯이 자신의 작품으로만 갤러리를 채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서초구 무늬와공간 갤러리에서 만난 박 회장은 기업 CEO가 아닌 ‘사진작가’로서 기자들을 맞았다. 박 회장은 이곳 갤러리 관장이자 사진작가인 임창준씨(서초이앤이치과 원장)의 권유로 전시를 준비하며 “개인전이 부담스러웠지만 준비를 하며 그동안 피사체를 보는 눈과 사진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게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충남 당진의 갯벌을 담은 작품 ‘숨’. 갯벌 사이로 난 물길이 꼭 글자 ‘숨’을 닮았다. ⓒ박미례
충남 당진의 갯벌을 담은 작품 ‘숨’. 갯벌 사이로 난 물길이 꼭 글자 ‘숨’을 닮았다. ⓒ박미례

도전·혁신의 ‘박미례 리더십’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CEO가 불러온 혁신에 업계가 주목했다. 수성엔지니어링은 토목 설계와 감리를 주로 하는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로 올해 창사 32주년을 맞는다. 철근, 콘크리트 등을 파악해 구조 계산, 지반 조사 등을 진행해 공공시설이 안전하고 아름답게 지어질 수 있도록 기술력을 제공한다. 박 회장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강완희 선대회장에 이어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수성을 이끌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책에 빠져 살던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외국계 은행에서 15년 가까이 일했다. 두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은행의 내부 감사와 시스템 전산화 업무를 총괄했던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수성에 해외 선진 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여자가 어떻게 하느냐’는 말부터 ‘회사를 매각하려고 한다’는 루머까지 나돌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1년에 170여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몽골, 동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까지 수주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바쁜 미팅 일정 탓에 수십 개 국가를 다니면서도 유명 관광지에 들른 적도 없었다. “일에 미쳤다”는 말을 들을 만큼 ‘올인’했다. 그만큼 수성은 성장했다. ‘박미례 리더십’의 성과였다. 

‘숨’ ⓒ박미례
‘숨1-1’. 전남 화순읍의 작은 저수지 세량제에서 만난 나무에게서 숨결을 느꼈다.  ⓒ박미례

10여년 쉼 없이 일하다 온 ‘번아웃’
숨쉬기도 힘들던 그를 바꾼 ‘사진’

“10년 넘게 단 1초도 마음 놓고 쉰 적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말 한마디 내뱉기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심장내과와 호흡기내과를 찾아갔지만 몸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번아웃(burnout·소진증후군)’이었다. 다 타버린 촛불처럼 박 회장의 마음은 지쳐있었다.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갑자기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일 말고 다른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사진’이 떠올랐어요. SPC사진클럽에 전화를 걸어 ‘여성들만 있는 반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남성들이 많은 업계에만 있다 보니 여성들과의 대화가 그리웠던 모양이에요. ‘있다’는 대답을 듣고 그 길로 등록했지요.”

카메라는 박 회장에게 온전히 ‘쉼’을 안겨줬다. 신나서 사진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일이 아닌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숲과 들, 바다를 만났다. “몇 년 전 한 겨울에 일본 삿포로 출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어요. 정말 행복한 기분이었지요. 그 마음이 벅차서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나 봐요. ‘아, 행복해’라는 제 말을 들은 저를 지도해준 교수님께서 ‘눈물이 날뻔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밀려오는 파도가 만들어 낸 하얀 포말이, 갯벌의 작은 생명이,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나무들이 그에게 숨을 내뿜었다. 생명이 내뿜는 숨을 들이쉬며 그는 마침내 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했다. “카메라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만난 자연이 숨쉬기조차 버겁던 그에게 ‘숨구멍’이었다. 박 회장은 이번 개인전 작가노트에서도 “끊임없이 변하는 바다, 한 자리를 지키는 나무, 돌, 숲… 내겐 숨구멍이다”라고 썼다. 개인전 제목을 ‘숨, 쉼’이라고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회장은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중앙대 사진아카데미 3년 과정을 마치고 중형 카메라 작업도 시작해볼 참이다.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그는 또 다시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저는 운 좋게 카메라라는 숨구멍을 찾았어요. 일에 흠뻑 빠져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꾸준히 오래할 수 있도록 저 마다의 숨구멍을 찾아보길 권합니다.”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로서의 당부는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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