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17대 총선이 끝나고 17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여성 정치인이 대거 등원하게 되자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들하고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정치의 영역에서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 여성들이 새로운 한국정치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서 달라진 현실을 직감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여성정치 원년이라고도 했고 여성이라서 더욱 유리하다고도 했다. 그러던 중 몇 가지 사건이 보도되면서 변하지 않은 한국 여성의 위상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이 상기되었다. 한국 경제가 아니라 우리 여성들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은 아닐까?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실제 중요한 사실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되물어본다.

외교부의 한 고위관리가 특파원을 성희롱했고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야당 여성대표를 패러디한 사진이 올랐다. 그것도 한 네티즌이 올린 사진을 관리자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긴 것이었다. 또 한 국회의원은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 것이다. 과거에도 고위관리들은 부하직원들을 성희롱했고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게 했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남성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국회에서는 남성 국회의원이 여성 국회의원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은 일도 있었다. 여성국회의원이 13%에 이르면서 우리는 그것을 다 잊었다. 알고보니 여성국회의원이 13% 되어도 한국 여성의 위상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사실 평등은 법으로 무엇을 못하게 하는 데서 오거나 무엇을 특별히 하게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평등의 진정한 의미는 아마 가치의 평등이 아닐까 싶다. 어떤 집단이 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집단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조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부여가 불평등이다. 1950년대 말에 미국에서 흑인인권운동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흑인도 백인과 같은 인간이라는 주장을 했던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검은 것은 아름답다'였다. 그들은 정확하게 불평등의 실체를 보았던 것이다. 다른 것이 불평등이 아니라 흰 것은 아름답고 검은 것은 더럽고 추한 것이라는 가치부여가 불평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흑인과는 밥도 같이 먹을 수 없고 학교에서 같이 배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학교 교육의 차별과 식당 사용의 차별이라는 문제는 가치의 불평등의 결과였다.

그래서 불평등을 고치려면 결과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검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것이다.

한국 여성에 대한 가치부여는 어떤가.아무리 여성국회의원이 13%가 되어도(사실 13%는 5.9%보다는 많지만 수학적 의미로는 굉장히 적은 수이다) 여성들은 고위직 남성과 같이 가면 술을 따라야 하는 존재이고 밖에서 설치고 다니면 안되고 집에서 조용히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남녀불평등이 없어지려면 여성들이 가진 존재가치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존재가치가 존중받을 때 여성들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회적 구성원이 되며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 인정받을 것이다. 그래야만 국회에서, 정치에서, 사회의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특이하게 사회에서 성공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하는 일로써 인정받게 될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의 성평등을 이루는 데 제도적인 조치는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는 문화의 변화로부터 온다. 그 문화 변화의 핵심이 가치의 평등이다. 여성들은 사회 어디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여성이 아니라 그들의 하는 일로써, 그들의 존재로써 인정받는 문화가 성립될 때 평등이라고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문화의 변화는 가능한가?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사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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