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둘러싸여 발전없는 섭식장애 담론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 목소리
24일부터 국내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
서울 곳곳 독립서점서 강연 등 열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이 실제보다 뚱뚱해보인다고 생각하는 여성. ⓒShutterstock
섭식장애는 ‘젊은 여성들이 마른 몸을 선망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가 얻는 병’ 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다. 박지니 작가는 이같이 “납작한” 섭식장애 담론을 걷어내자며 국내 최초로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했다.  ⓒShutterstock

10대들 사이에서 ‘키빼몸(키에서 몸무게를 뺀 수치) 얼마’, ‘뼈말라(뼈가 보이도록 마른 것)’와 같은 ‘프로아나(pro-ana, 거식증을 동경하는 사람)’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함께 자신의 몸 사진을 올리고 극단적인 절식을 하자며 ‘친구’를 찾는 수천 개의 글들이 올라온다. 

흔히 거식증, 폭식증이라고 부르는 섭식장애는 원래 20대 여성에게 가장 많지만, 최근 10대로까지 연령이 하향되는 추세다. 논란이 되면서 섭식장애는 단순히 ‘젊은 여성들이 마른 몸을 선망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가 얻는 병’ 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 ‘외모강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거나,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몸매에 대해 말하기를 금지하자는 식으로 논의는 흘러갔다. 

거식증에 대한 용감한 기록 '삼키기 연습'을 쓰고 국내 최초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를 기획한 박지니 작가와 여성신문에서 지난 2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상혁 수습기자
거식증에 대한 용감한 기록 '삼키기 연습'을 쓰고 국내 최초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를 기획한 박지니 작가. ⓒ여성신문

섭식장애 당사자이자 저서 『삼키기 연습』를 펴낸 박지니 작가는 이같이 “납작한” 섭식장애 담론을 걷어내자며 국내 최초로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했다. 

세계 각국에는 이미 섭식장애 인식 관련 행사가 있다. 하지만 이는 그가 기획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외국 행사는) 치료 중심이고 거기에 당사자가 없다. ‘섭식장애는 이렇게 위험합니다’하고 알리는 게 전부다.”

물론 섭식장애는 심각해지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정신질환이다. 박 작가 역시 주변의 여러 섭식장애 환자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살아있기 위해 치료가 필요하다는 데 그도 동의하지만, “(섭식장애는 정신질환이기 때문에) ‘거식증의 악마’를 떼어내면 끝나는 게 아니다. ‘완치’라는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며 섭식장애 담론이 환자와 치료 그 자체에서 그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당사자들은 '보통의 여성이 겪는 불안한 그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한다. 의사는 그런 점을 모르고 환자가 과학적인 치료를 거부하는 비합리적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환자들이 ‘돌아가야 할’ 몸을 둘러싼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여성들의 섭식장애 ‘치료’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오는 24일부터 7일간 서울 곳곳 독립서점에서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진행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오는 24일부터 7일간 서울 곳곳 독립서점에서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진행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행사는 24일부터 일주일간 저녁 7시 30분, 서울 곳곳의 독립서점에서 진행된다.

“병원 강당 같은 곳 말고 여성들이 편하게 부담 없이, 환자라는 낙인 없이 올 수 있는 곳이 독립서점이라고 생각했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 친분이 생긴 ‘밤의서점’ 점장님이 돕겠다고 나서주셨다”며 장소를 독립서점으로 결정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첫날 섭식장애 당사자들이 행사의 문을 열고, 다음 날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쓴 임소연 교수의 북토크가 진행된다. 행사를 다채롭게 해줄 섭식장애 당사자이자 아티스트인 백은선, 바바라의 공연도 마련돼 있다. 백상식이장애센터 안주란 식사치료 전문가와 인제대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 김율리 교수가 강연자로 나와 섭식장애의 치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어 정희진 평론가이자 당사자가 강연과 토크로 인식주간의 막을 내린다.

오는 24일부터 7일간 서울 곳곳 독립서점에서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진행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오는 24일부터 7일간 서울 곳곳 독립서점에서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진행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섭식장애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다. 박 작가는 “(사람들은) 누군가 자발적으로 해로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면 그 개인을 윤리적으로 비난한다. 술, 담배, 마약 등이 그렇다. 섭식장애도 그중 하나”라며, “섭식장애에 대해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제한적인 공간 여건이나 개인 사정으로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유튜브로 라이브 스트리밍을 제공할 예정이다.

박 작가는 “전 사회 여성들은 다 몸이나 식사에 대해 고민한다. 이 고민은 일반적이니 다 같이 고민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행사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서, 사람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수치심 때문에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사람, 지방에 있어 오기 힘든 사람, 가족이라는 벽을 마주하고 있는 아동·청소년 등에게 가닿으면 좋겠다”고 염원을 전했다.

행사 참여와 관련한 더 자세한 사항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rabbitsubmarinecol) 인스타그램 계정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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