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영의 침묵을 깨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2022년 12월2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해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출근길 선전전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2022년 12월2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해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출근길 선전전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장애와 차별’은 매 학기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이다. 지난 2022년 2학기, 가장 흔히 잘못 쓰이는 장애인-정상인의대립항과 ‘장애우(友)’ 표현에 대해 일러주며 수업을 시작했다. 장애우는 장애인이 자신을 지칭할 때 쓰기 힘들뿐더러, 오히려 장애인을 도와줘야 할 사람이란 인식을 주는 말이라는 지적이 있다.

학생들의 수업 피드백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이야기도 용어 사용과 관련한 것이었다. “저는 이번 수업을 듣고 ‘장애우’가 오히려 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장애우’가 오히려 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는 말인 것은 알았지만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인 줄 알았다”, “수업 듣기 전에는 ‘비장애인’ 대신 ‘정상인’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듣고 나서 고치게 됐고, 장애 관련 표현에 대해 주의해야겠다.”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100%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친근한 표현이 ‘장애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당사자들에게 더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지금 당연하지 않은 것들도 언젠가는

장애인권 투쟁사를 알려주는 데는 나름대로 ‘큰 그림’이 있었다. 한국의 장애인 권익 운동은 근대까지도 생존조차보장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가, 현대에 와서야 취업제한에 대한 투쟁 즉 ‘노동할 권리’를 찾는 것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탈(脫)시설’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여기까지 설명한 뒤, 우리의 생활 공간에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이동권 보장임을 알려줬다.빽빽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공권력과 대치 중인, 20년째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모습도 슬라이드로 보여줬다.

학생들에게 “취업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은 인턴십 기회를 얻었는데,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때문에 면접에 늦게 됐다. 이 경험이 내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반대하도록 하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상당수가 수도권출신 학생들이라, 전장연의 투쟁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학생이 많았다. 학생들은 “불편하고 그 순간엔 원망스럽겠지만 그 운동은 지지한다”고 답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미디어로만 접한 학생들도 답변의 방향은 크게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런(장애인 이동권 투쟁 같은) 것들이 결국 지하철을 더 많은 사람이 쾌적하게 탈 수 있도록 바꾸는 거니까 불편해도 욕하면 안 된다”라고 지지의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 보이는 장애인의 기본권 보장이 한때 대다수에게 당연하지 않은, 급진적이고 비용을 초래하고 질서를 해치는 것으로 보였던 것처럼 지금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도 언젠가는 당연히 주어져야 할 모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권리를 주장하는 일상의 모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학생도 교수도 힘들어하는 역사 수업을 통해 유도하고픈 성찰이었다.

차별하지 않는 비장애인을 넘어 환대하는 시민으로

이동권 투쟁에 나선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가해지는 국가의 폭력과 시민들의 몰이해 관련 소식이 연일 들려와 마음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이야기들이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수업의 익명 토론 게시판을 빌어,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 학생이 있었다.

“제가 두 살 때, 아버지가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옷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 팔 한쪽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팔로 무슨 일을 하겠냐’는 말을 듣고 오면, 한 손으로 운전해서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고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장애인을 무조건 돕는 게 아니라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게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 생각이라는 수업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무조건 돕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한 손으로 도저히 무언가를 하실 수 없을 때만 도와드립니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 중 자신이 만나게 되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태도를 알려주고 싶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학생들이 앞으로 장애인 차별철폐운동, 권익 활동 옹호자, 지지자, 그리고 환대하는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한 학기 수업, 그것도 일주일에 2시간 남짓한 수업이지만, 학생들 마음에 이 시간의 고민, 놀람, 납득과 다짐이 그 언젠가의 환대의 씨앗으로 심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하영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 ⓒ신하영 교수 제공
신하영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 ⓒ신하영 교수 제공

신하영 교수가 2021년부터 세명대 정규 교과목으로 개발해 강의 중인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공존’ 수업의 주요 내용과, 학생들이 참여한 토론에서 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학생들과의 대화 내용은 연구와 저술 목적으로 익명 처리, 오탈자 교정을 포함한 각색을 거쳐 동의를 얻어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연재는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종료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