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문화이야기]
아니 에르노 읽기3.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의 소설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씀, 신유진 옮김. 1984 BOOKS) ⓒ1984 BOOKS
아니 에르노의 소설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1984 BOOKS 펴냄) ⓒ1984 BOOKS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명도 오열도 없이 매우 덤덤하게 흘러간 장례식에서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교원 발령을 기다리던 에르노. 그녀는 아버지에 관한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살면서 이어졌던 아버지와의 ‘거리’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이다.

『한 여자』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랬듯이, 아버지에 대한 에르노의 기억 역시 촘촘하다. 부모의 삶을 이토록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딸이란. 부모의 삶을 감동적으로 미화하는 글들 보다 에르노의 마음이 더 두텁게 느껴진 이유는 그녀의 지독한 관찰력 때문이기도 하다.

에르노의 아버지는 농가의 일꾼이었던 할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공장노동자로 일하다가 어머니와 결혼하고서는 상인이 되었던 사람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욕설을 주고 받았는데, "무능한 놈! - 미친년!” “한심한 놈! - 늙은 걸레!” 같은 상스러운 말들이었다. 부모의 이런 문화와 자신이 편입된 상층 세계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에르노의 감수성은 무척 예민하다. “교육을 잘 받고 자란 사람들이 그저 간단한 인사에도 극도로 친절함을 나타내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부끄러웠다.”

에르노의 아버지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책, 음악, 그런 건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필요 없어." 그래서 에르노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나는 그가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과 생각은 프랑스어 혹은 철학 수업, 반 친구들의 빨간 벨벳 소파가 있는 거실에서는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교수가 되고 결혼을 한 에르노는 남편에게 부모의 집에 함께 가서 지내자고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고학력자,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라서 늘 빈정거리는 말투를 쓰는 그가 어떻게 이 용감 무식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겠는가.”

이제 아버지와는 다른 세계에서 서로 간의 먼 거리를 확인한 에르노에게는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는 것만이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에르노에게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내가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이었다. 글을 거의 마쳐가던 에르노는 열두 살 때 아버지와 시립 도서관을 갔던 일을 떠올린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라 너무 신이 나 있었는데, “무슨 책을 원하십니까?"라는 직원의 질문에, 원하는 책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부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우리는 도서관에 다시 가지 않았다.”

에르노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읽어낸다. “어쩌면 그의 가장 커다란 자부심 아니 심지어 그의 존재 이유는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에르노는 굳이 소설의 형식으로 아버지를 미화하지 않고, 기억하는 그대로의 아버지의 모습을 기록했다. 거기에 허구는 없었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는 자신의 모습, 그러니 자신 또한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의식까지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그녀에게는 소설보다 아버지의 삶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에르노의 아버지를 읽고 나서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아버지와 비교해 보았다. 딸이 담배를 피운 것을 눈치채고 어머니 앞에서 엄숙하게 훈계하고 있을 때 정지아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떴다. “그때 어머니 나이 환갑을 넘었다.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운하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다.” “남들에게는 빼도 박도 못하는 빨치산의 딸”이겠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인 딸의 눈에는, 오늘 같은 시대에 혁명과 사회주의와 유물론을 신봉하던 아버지의 삶은 코미디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장례가 치러진 사흘 간의 시간을 거치면서 빨치산이었고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로 돌아온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를 찾은 정지아의 글은, 아버지에 대해 글을 씀으로써 비로소 거리를 넘어서게 된 에르노와 닮은 꼴이다. 이제 어느덧 나이가 든 딸들은 자기 아버지들과 이렇게 뒤늦은 화해들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아버지와 딸들의 화해는 그렇게 늦게 서야 이루어지곤 하는 것일까.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작가 사진=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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