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적 현대미술가의 첫 한국 개인전
31일 리움미술관서 개막...38점 전시
2011년 미 구겐하임 회고전 이래 최대 규모
“도발적 익살꾼이 선보이는
공감·토론·연대 경험할 수 있을 것“

무릎 꿇은 히틀러, 운석에 맞은 교황, 12만달러(약 1억5000만원)에 낙찰됐던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 틀을 깨는 작가, 지금 가장 논쟁적인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2)이 한국 첫 개인전을 연다.

오는 31일부터 7월16일까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WE’다.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Maurizio Cattelan : ALL’ 이후 최대 규모 전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극사실적 조각과 회화 작품을 모았다. 덕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 한 개, ‘코미디언’(2019)은 카텔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12만달러에 팔렸는데, 그 직후 한 행위예술가가 퍼포먼스로써 전시장에서 이 바나나를 떼어 먹어버리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작품이 어떻게 그렇게 비싸게 팔렸을까? 예술의 본질과 미적·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쟁을 불러온 작품이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묘사한 ‘아홉 번째 시간’(1999), 교복처럼 단정한 옷차림으로 두 손을 모으고 무릎 꿇은 아돌프 히틀러를 묘사한 작품 ‘그’(2001)도 논쟁적인 작품이다. 후자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열하게 고민케 했다는 평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 101 × 41 × 53 cm ⓒ이세아 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 101 × 41 × 53 cm ⓒ이세아 기자

이탈리아 출신 카텔란은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며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다. 18K 황금 103㎏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2016)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뒤샹의 후계자’로도 불리지만, 작가는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intruder)”로 여긴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고,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미술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미술관 바닥을 뚫고 엉뚱한 곳으로 나와버린 듯한 카텔란의 얼굴을 표현한 작품 ‘무제’(2001)에서도 그러한 정체성이 느껴진다. 

카텔란은 2022년 미 가고시안 갤러리와의 인터뷰에서 “내겐 ‘침입자 콤플렉스’가 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가 예술계에 초대받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쫓아낼까 봐 두렵다”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하건 상관없지만 남을 사칭하는 사기꾼(imposter)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무제,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신발, 가변크기 ⓒ이세아 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 무제,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신발, 가변크기 ⓒ이세아 기자

“그의 작품 대부분은 미술사를 슬쩍 도용하거나 익숙한 대중적 요소를 교묘히 이용한다. 나아가 익살스럽고 냉소적인 일화를 선보이면서 무례하고 뻔뻔한 태도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인식의 근간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린다. (...)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 이처럼 스스로를 희화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삶의 폐부를 찌르며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하는 현실비평가의 면모를 보인다.” (리움미술관 전시 해설 중)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동물 박제나 동물의 뼈를 이용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곳곳에 떼지어 앉은 박제 비둘기들 부터 힘없이 천장에 매달린 말을 통해 이탈리아 파시즘의 몰락을 표현한 듯한 ‘노베첸토’(1997), 그림 형제 동화 ‘브레멘 음악대’의 한 장면을 그대로 표현한 ‘비밀’(1998), 권총으로 목숨을 끊은 다람쥐를 묘사한 ‘비디비도비디부’(1996) 등이다. 작품 제작 목적으로 동물을 포획하지 않았고 합법적 절차로 제작됐다고 한다. 

‘죽음’도 카텔란 작업의 오랜 모티프다. 전시장 2층 붉은 카펫 위에 누운 시신 아홉 구, 대리석 조각 작품 ‘모두’(2007)는 숙연하고 애달프다. 이태원 참사의 기억을 소환하고 추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리움미술관 측은 밝혔다. 눈을 감고 누운 나이 든 남자 곁에 누워 그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강아지를 조각한 ‘숨’(2021)도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에 눈을 떼기 어려운 작품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숨, 2021, 카라라 대리석, 40 × 131 × 78 cm / 30 × 65 × 40 cm ⓒ이세아 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 숨, 2021, 카라라 대리석, 40 × 131 × 78 cm / 30 × 65 × 40 cm ⓒ이세아 기자

전시 제목 ‘WE’는 동명의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참조보다는 확장된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하고도 심각한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 온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도발적인 익살꾼인 카텔란의 채플린적 희극 장치가 적재적소에 작동되는 작품들을 마주하며 공감, 열띤 토론 그리고 연대가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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