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재벌 2세 중독증…여성들 사이서 신데렐라 붐 재연

전국 강타한 “애기야, 가자” 변함없는 남녀 권력관계 반증

“애기야!”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화장품·머리빗 등 자신의 체취가 묻은 것들을 남자 차에 이것저것 두고 내린다, 화장 안한 성의 없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물만 보면 “수영할 줄 알아요? 난 못 해요”란 알 수 없는 멘트를 날리며 물을 향해 뛰어들고픈 강한 충동을 느낀다, 멀쩡한 선풍기와 화장실 문을 고장낸다, 조카의 돼지저금통을 빼앗다시피 해 동전을 모아 애인과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겠다고 한다, 남자친구에게 히피 스타일의 이동건 패션 혹은 성공한 CEO 스타일의 박신양 패션을 강요한다.

박신양(극 중 재벌2세 한기주 역)이 피아노를 치며 연인 김정은(극중 강태영 역)에게 '사랑해도 될까요'를 연가로 부른 최근 방영분에서 시청률 50%를 육박하며 '국민 드라마'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파리의 연인'. 짐작하겠지만, 극중 태영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해 여성들이 얼마나 新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중독 돼 있는지를 판단해보는 평가 항목들이다.

최근 결혼정보업체들에서 20~30대 미혼 여성 회원들이 배우자감으로 꼽는 1순위는 한기주(박신양 분)다. '한기주 신드롬'을 선두로 '황태자' 드라마가 연이어 히트하면서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에게 '신데렐라 신드롬'이 봇물처럼 확산되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커플 매니저들은 “최근 드라마의 영향으로 드라마 속 재벌 2세 주인공처럼 경제력, 성격, 외모 등을 완벽하게 갖춘 남성을 이상형으로 꼽는 여성들이 많아졌다”고 전한다. 개인면담을 통해 결혼을 앞둔 미혼 여성들의 희망사항을 들어 보면 거의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 '파리의 연인' 주요 시청 층인 여성들의 경우, 미혼인 20, 30대가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높은 편이지만, 50대까지 20%대를 넘는 수준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것도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연령 평균화를 반증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

[전 부인 백승경(김서형)과 식사 도중 '당신 연애하냐'는 질문을 받자] “연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같이 밥 먹고 집에 데려다주고, 큰 상처 주기 싫어 작은 상처 주려는 게 연애라면 하는 것 같다”는 기주의 대사는 이상적 남성역할 모델이 람보의 터프가이에서 디카프리오의 세련됨과 섬세함으로 변화하고 있는 트렌드를 보여준다. 이처럼 주인공들의 성격이 바뀌었으니 남녀의 권력구조에도 변화가 있을까? 그러나 기대는 완전히 묵살된다. 기주의 어록으로 떠오르는 1순위는 (곤경에 처한 태영을 돕기 위해 애인을 자처하며 던진 이 한마디로 전국에 '애기야' 신드롬을 일으킨) “애기야, 가자”다. 왕자님과 공주님은 그나마 비슷한 신분을 이루겠지만, '애기야'는 둘의 권력관계가 무엇인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뻔한 구성의 전형적인 로맨스 물에 여성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성격이 과거의 멜로드라마에 비해 조금씩은 변화했으나, 남성에 의해 구원받으려는 여성들의 바람은 변화에서 한발 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여성들은 현대판 로맨스에 복고풍이 가미됐기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욕구가 아직도 과거와 변함이 없다는 것은, 여성들의 삶이 여전히 남성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최선경 객원기자(줌마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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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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