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공주 이미지서 탈출, 평범·솔직·꿋꿋함으로

왕자에게 인간 냄새… 기존 공식은 불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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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주근깨 소녀 캔디가 만화에서 나와 청순가련형 드라마 여주인공들의 자리를 대신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기존 신데렐라 역시 새 버전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래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아예 캔디 콤플렉스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2003년 방영된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남정은(정다빈 분)과 최근 종영한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이신영(명세빈 분)에서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파리의 연인'의 강태영,'황태자의 첫사랑'의 김유빈,'풀하우스'의 한지은에 이르기까지 '캔디'주인공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미모와 지성에다 착한 마음씨까지 갖추고 있는 여주인공 일색인 드라마 판도에 등장한 '캔디'주인공들의 특징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무엇인가 하나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우선, 캔디가 주근깨가 박힌 얼굴이었던 것처럼, 캔디 주인공들은 '공주'의 미모에서 벗어난 것으로 그려진다. '풀하우스' 첫 회에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두 갈래로 질끈 묶고, 안경을 쓴 모습으로 그려지는 한지은 역은 이러한 설정 탓에 송혜교가 연기하는지 모를 정도다. 파리의 연인에서는 한기주와 윤수혁이 강태영에 대해'못생긴 얼굴'이라고 의견일치를 본다. 강태영이 입을 삐죽이며 대사를 하는 코믹한 장면에서도 볼 수 있듯 캔디 주인공들은 예쁜 척을 하지 않는다.

다음으론 뛰어나기는커녕 평범하고 변변치 못하기까지 하다.'황태자의 첫사랑'의 김유빈(성유리 분)은 드라마 초기, 전문대 레크리에이션과를 졸업하고 3년이 지나도록 취업도 못 한 채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는 '백조'로 그려졌다. '풀하우스'의 한지은은 변변찮은 인터넷 소설 작가로 출판사에 원고를 부탁하고 다녔으며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이신영은 특종상을 탄 날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고, 투견장 취재 갔다가 개에게 물리기도 하며 치질도 앓고 있다. 치질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주치의가 하필이면 초등학교 동창생이어서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무너진다.

이런 캔디 주인공들이 황태자 주인공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캔디 주인공들은 솔직하다. 체면에 얽매인 '공주'가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캔디 주인공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파리의 연인에서 강태영은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 서툰 한기주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조언한다. 이에 한기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마음을 움직여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며 '감정이 있는'사람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일밖에 모르던 재벌 2세 한기주가 “애기야, 하드 사줄게 나하고 놀자”라고 말할 줄 누가 알았을까. 풀하우스의 한지은도 영화배우 이영재(비 분)와 '티격태격'말장난을 넘어 당차게 쏘아주기까지 한다. 재벌 2세와 아시아의 톱 영화배우라는 설정에도 불구, '막 나오고''막 망가진'다. 황태자는 이런 캔디 주인공의 태도에서 서민층과 분리된 높은 장벽 자신만의 세계에선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과 함께 도전의식을 느낄 것이다.

캔디 주인공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은 이들을 돕고 싶은 황태자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캔디의 상황은 부와 권력을 가진 황태자가 도와주기에 적절해 권력의 파워를 본인 스스로 체감케 해준다.'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는 태영의 작은 아버지의 자동차 할부금을 대신 갚아, 태영이가 소중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카메라를 되돌려받게 해주며 회사 사보팀으로 취직도 시켜준다. “여자들은 가끔 그런 상상하거든요. 화려한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시든 꽃처럼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어깨 감싸 안아주고 흐트러진 머리 감아 올려주는 상상이오”라는 태영의 말은 곧 현대판 신데렐라의 대사다.'풀하우스'의 이영재는 친구들에게 사기를 당해 집을 빼앗긴 한지은을 머무르게 해주며 가정부로 고용한다.

그러면서도 캔디 주인공들은 꿋꿋함과 자존심을 잃지 않아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왕자님을 감동시킨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이신영은 “내 인생이 짙은 안개에 휩싸였습니다. 앞이 내다보이질 않고, 가다가 낭떠러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물납니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고 불빛이 멀어 보여도 난 뛰고 또 뛰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이신영입니다”라고 혼자말을 하며 굳센 의지를 다진다. '파리의 연인'의 태영은 기주에게서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날 “눈물은 아래로 떨어지지만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면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현재에 충실하고 씩씩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캔디와 황태자와의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는 큰 틀에선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여성과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특별한 남성이라는 황태자 드라마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솔직히 전달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당차게 도전하는 캔디 주인공은 황태자의 후광만을 바라는 수동적인 신데렐라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있다. 황태자의 입장에서는 캔디에게 도움을 베푸는 고전적 황태자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다소 어리숙한 캔디로 인해 보다 인간 냄새나는 황태자로 변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남녀 모두에게 가장 인기있는 신데렐라와 왕자의 역학관계가 좀 더 근대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일까.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만의 '살짝'변신만으론 남녀관계의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임영현 기자 sobeit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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