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문화이야기] 내 어머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유창선의 문화이야기] 내 어머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 유창선 작가
  • 승인 2023.01.25 08:10
  • 수정 2023-01-31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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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읽기 2.『한 여자』
『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펴냄. 사진=열린책들
『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펴냄. 사진=열린책들

자식들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과 옷을 사주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비싼 옷 한번 살 줄도, 택시 한번 탈 줄도 모르는 어머니들의 시대가 있었다. 나를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고마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남들 앞에서 세련되지 못한 어머니 때문에 난처해하던 자식들의 시대가 이어졌다. 왜 내 어머니는 같은 세계로 들어서지 못한채 비루했던 시절의 세계에 그대로 남아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무거운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는 지하철을 타고 딸네 집을 오가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드는 의식의 경험,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여자』는 에르노가 아닌 ‘나’의 어머니를 기록한 책으로 읽히게 된다. 

 ‘나’의 어머니를 기록한 『한 여자』

마치 ‘박완서의 어머니’를 읽던 때와 다르지 않다.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어머니는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란다"고 가르치곤 했다.(『엄마의 말뚝』) 그런 덕분에 신여성이 된 박완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 동네 사는 애들 하곤 격이 다르게 만들려고 엄마가 억지로 조성한 나의 우월감이 등성이 하나만 넘어가면 열등감이 된다는 걸 엄마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사회의 하층 세계에 살던 어머니, 그리고 그 세계를 벗어나 대학교수가 되어 상층 세계로 들어간 딸 사이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이미 청소년기의 에르노는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나왔고, 두 사람 사이에는 투쟁만이 존재했다. “프티부르주아인 학급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그러한 여성적 이미지에 가까워서 날씬하고, 행동이 점잖고, 요리를 잘하고, 자신들의 딸을 다정하게 ‘사랑하는 딸’이라고 불렀다. 내 어머니는 너무 요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다리 사이에 병을 끼고서 병마개를 딸 때면 눈길을 돌려 버렸다... 다른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나는 내가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모습인 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하지만 에르노의 어머니는 자신이 딸에게서 경멸 받을까 불안해하며, 대신 사랑을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나의 어머니는 이 세계에 대해, 훌륭한 교육과 우아함과 교양이 그녀에게 불러일으킨 찬탄과, 자신의 딸이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자부심과, 겉으로는 절묘한 예의범절을 보여 주면서 속으로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내게 진정 중요했던 유일한 여자”

에르노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병원을 옮겨 다니다가 세상을 떠난다. 에르노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반드시 글로 남기고 싶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치매에 걸린 노인으로 남겨놓는 것이 아니라, 황금 같은 시절이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함께 복원시켜 놓고 싶은 갈망이었다. “나이 들어 노망난 여자와 젊어서 힘차고 빛이 났던 여자를 글쓰기를 통해 합쳐 놓지 않고서는 내가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에르노는 상층 세계로 들어간 이후 어머니에 대해 부끄러워 했던 기억을 소환했지만, 결국 그녀가 하고자 했던 것은 어머니의 삶을 복원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갚음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부재 앞에서 바르트는 “이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통절하고 격한 바르트의 슬픔은 사실 온전하게 내 것이 되지는 못했었다. 배우가 너무 서럽게 엉엉 울어버리면 관객들이 슬퍼할 여백이 남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에르노라고 해서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황망함의 크기가 작았던 것은 아니다. “그 주 내내 아무데서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벌어졌다. 잠에서 깨어나다가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곤 했다. 어머니가 꿈에 나왔고, 죽었다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무거운 꿈에서 빠져나오기도 여러 번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일들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했던 유일한 여자”였다는 에르노의 글은 여전히 객관적이며 심지어 관찰자적이다. 그럼에도 에르노가 기억하는 어머니가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과 놀랄만큼 빼어닮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자전적 기록은 우리들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니 에르노의 어머니가 아닌 나의 어머니를 기록한 책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에르노는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녀는 시몬 드 보부아르보다 일주일 앞서 죽었다.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그렇게 딸은 어머니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상실되었던 모습까지도 복원시켜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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