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재산분할 리포트]
노소영-최태원 재산분할 소송
법조인들 “혼인 전 상속재산도
유지에 협력했다면 분할 대상”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정당방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한다. ⓒ여성신문 

가사노동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은 민감한 사안이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에서 재판부는 34년간의 주부 역할을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로 665억원으로 평가했다. 노 관장이 요구한 최 회장의 SK㈜주식의 42.29%(650만주)는 ‘특유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를 두고 가사노동 기여도와 여성의 재산권을 경시한 판결이라는 시선이 따갑다. 남성들조차 “가장 봉건적인 판결”이라고 할 만큼 재산분할 인정분이 작다. 최근 재산분할에서 전업주부의 기여도가 40%까지 인정된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665억원이라는 절대액수가 많다고 할 수 있으나 비율로 따져보면 청구액의 약 5%, 전체 재산의 1.2%에 불과하다. 노 관장이 “축출이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결정되면서 부부 한쪽의 고유 재산을 어디까지 분할 대상으로 인정할지, 배우자의 내조와 가사노동 기여도가 어떻게 평가될지 관심이 쏠린다. 법조인들은 1심 판결에 대해 “혼인기간, 회사경영에 대한 기여 등을 고려하면 재산분할 비율이 낮았다”고 지적한다. 항소심 결과는 재벌가뿐 아니라 사업체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이혼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재산분할을 고려해 기존 재산을 주식으로 옮겨놓는 식의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있고, 재판부가 내조와 가사노동의 기여도를 낮게 인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구액의 5% “너무 낮다”

지난해 12월 서울가정법원은 1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식 650만주(시가 1조3700억원)의 42.29%(650만주)를 재산분할로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특유재산’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자료는 3분의 1, 재산분할 청구는 청구액의 5% 남짓만 인용됐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쪽이 결혼 전부터 갖고 있던 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일컫는다. 결혼 전 부모로부터 상속이나 증여받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가액이 큰 재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재벌가 뿐 아니라 일반 이혼소송에서 특유재산의 범위는 늘 다툼의 대상이다.

대법원은 2002년 부부 중 한쪽의 특유재산이라고 해도 다른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특유재산의 유지에 협력해 감소를 방지하거나 증식에 협력했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특유재산도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뉴시스·여성신문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뉴시스·여성신문

가정법원 판사 출신 A변호사는 “외도를 하고 혼외자를 둔 남편이 이 사실을 언론사에 알린 상황에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게다가 재산분할도 정당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이혼 전문 B변호사는 “배우자의 의사에 반해 혼인생활 파탄의 원인을 언론사를 통해 공개했음에도 책정된 위자료는 턱없이 낮다”고 말했다.

앞서 노 관장은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부에 드러난 바로 5조 가까이 되는 남편 재산에서 제가 분할 받은 비율이 1.2%가 안 된다”며 “34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안팎으로 내조하면서 사업을 현재 규모로 일구는 데 제가 기여한 것이 1.2%라고 평가받은 순간, 그동안 저의 삶의 가치가 완전히 외면당한 것 같다”고 했다.

1심 재판부가 책정한 재산분할 비율에 대해서는 법조인 상당수가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라 하더라도 최 회장의 주식은 개인의 것인 점, 혼인기간이 오래됐으며 회사 경영에 노 관장 가족이 기여한 바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으므로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재산분할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가사노동 가치 기여도는?

‘기업은 가사노동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최근 법원 판례는 부부 한쪽의 특유재산이라도 하더라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기여도를 예전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서다.

이혼전문 변호사인 김지현 변호사는 “전업주부라고 하더라도 결혼 기간이 3년만 돼도 특유재산의 증가나 유지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는 판례가 많다”며 “전업주부의 노동으로 가사 도우미나 육아 도우미 비용이 들지 않았으니 가정과 재산 유지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특유재산을 재산분할 대상으로는 인정해도 아직 기여도는 낮은 편이다. 김지현 변호사는 “흔히 전업주부가 혼인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재산분할 기여도를 50% 정도 인정바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괄적으로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재산분할 액수가 많을수록, 특유재산 규모가 클수록 전업주부의 기여도가 많아야 30~40% 정도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면 재산분할을 더 많이 받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노 관장 판결처럼 특유재산이 분할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 것은 흔치 않다”고 했다.

노 관장 재산분할 청구 소송의 항소심 판결은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김재련 변호사는 “항소심에서는 최 회장이 회사 주식을 갖고 있는 점, 혼인기간이 오래된 점 등이 재산분할, 위자료 책정에 적극적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봤다.

김지현 변호사는 가사노동 기여보다는 기업 성장에 기여한 부분을 재판부에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여러 언론 보도 등으로 많은 대중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정재계 혼인으로 보고, SK그룹 성장에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면서 “노 관장도 아트센터 나비를 통해 그룹 이미지 향상 등에 기여한 바가 크다면, 항소심에서는 가사노동 기여도보다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의미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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