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연풍리 집결지 연내 완전 폐쇄 선언
업소 74곳·성매매 여성 200여 명 추정
수원·평택 등 유입으로 최근 증가세
장애인 인신매매·악성채무 빌미 성매매 강요도
상인·주민들은 고통 호소...“젊은 사람들 다 떠나”

김경일 파주시장 “성매매집결지 폐쇄는
여성인권 회복 위한 가장 중요한 현안
파주시 미래 위한 마땅한 결정”

17일 저녁 7시경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성구매자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성매매 업소들 앞을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이세아 기자
17일 저녁 7시경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성구매자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성매매 업소들 앞을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이세아 기자

캄캄한 시골 도로를 달렸다. 저녁 7시인데 문을 연 가게가 드물다. 빈집들 사이로 성매매 집결지가 홀로 환히 빛났다. 한때 국내 최대 성매매 집결지 중 하나였던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용주골’. 파주시는 이곳을 올해 안에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성매매 집결지 정비계획’을 새해 1호 결재로 처리했다.

17일 저녁 7시 5분경 불을 밝힌 업소는 최소 40곳. 단장을 마친 여성들이 대기 중인 업소만 25곳 정도였다. 파주시에 따르면 2023년 1월 현재 약 3만㎡ 넓이의 일반주거지역에 74개 업소가 영업 중이다. 성매매 여성 수는 2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채무 관계 등으로 악질 업주들에게 약점을 잡힌 여성들도 있다. 2020년엔 조직폭력배 일당이 지적장애 여성들을 이곳에 팔아 넘겼다가 적발됐다.

이곳 성매매 업소 수는 2019년 56곳에서 2020년 67곳, 2021년 76곳으로 증가 추세다. 2021년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에 이어 평택역 부근 성매매 집결지도 지난해 폐쇄 절차가 시작되면서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들이 연풍리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17일 저녁 7시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이세아 기자
17일 저녁 7시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이세아 기자
17일 저녁 찾은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이세아 기자
17일 저녁 찾은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이세아 기자

저녁 7시 10분. 성구매자들의 행렬이 시작됐다. 짙은 선팅을 한 승용차들이 하나둘 집결지로 들어왔다. 여성들이 앉은 유리방 앞을 아주 천천히 지나가다가 멈춰 서곤 했다. 어른 셋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좁은 골목에도 차들이 지나다녔다. 업소들이 집결한 주요 골목을 도보로 돌아본 약 20분간 성구매자로 추정되는 남성 5명과 마주쳤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이 업소 저 업소를 기웃거리던 젊은 남성,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리방에 들어서는 중년 남성도 봤다.

집결지 일대는 얼마 전 내린 눈이 얼어 길이 미끄러웠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미로 같은 골목길은 아주 빙판길이라 넘어질 뻔했다. 업소들이 환히 불을 밝힌 큰길과 달리 몇 달은 방치된 듯한 빈 가게들이 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임대’ 간판을 내건 업소들도 여럿이었다. 

이곳 업주들은 상조회를 결성해 집결지를 조직·관리하고 있다. 큰길가에 상조회 건물이 있었으나 불은 꺼졌고 문도 닫혀 있었다. 현장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뭐야? 어디서 할 짓이 없어서 남의 가게 사진을 찍어?” 주차장 옆에선 ‘OO시에서 아가씨가 오기로 했다’며 이야기를 나누는 남성들을 발견했다.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기자임을 밝히자마자 거절당했다.

17일 저녁 찾은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성구매자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성매매 업소들 앞을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이세아 기자
17일 저녁 찾은 경기도 파주시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 성구매자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성매매 업소들 앞을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이세아 기자

지역 주민들은 집결지 폐쇄를 반기는 분위기다. 집결지 내부로 들어서기 전인 저녁 6시 45분. 연풍교 북쪽 연풍4리 마을을 둘러봤다. 인적이 드물었다. 1km 거리에 초·중·고교와 아파트 단지가 있지만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파주시가 운영하는 ‘청소년자유공간 쉼표’도 텅 비었다. 집결지와 약 200m 떨어진 곳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활동가는 성매매 집결지란 낙인 탓에 지역 아동·청소년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며 신속한 폐쇄를 촉구했다. “일부 보호자들은 아이들이 여길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꺼려요. (집결지 근처에) 못 가게 통금시간을 두기도 해요. 그래서 이 일대에 청소년 시설이 거의 없죠. 저희 활동에도 어려움이 있고요. 쉼표가 들어서기 전인 2020년에도 폐쇄 추진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대로예요.”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로 지역 내 연풍리 집결지 재개발 논의가 시작됐다. 2005년 지역특화상품으로 성교육장(‘젠더파크’)를 개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2019년 도시재생사업 ‘용주골 창조문화밸리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작가 공방·문화공간 등이 들어선 ‘EBS연풍길’이 근처에 조성됐다. 그러나 성매매 집결지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근처 호프집 사장은 “동네 소문도 나빠지고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살려고 하질 않으니 좋을 게 없다. 얼른 폐쇄하면 좋겠다”고 했다. 한 편의점 사장은 성매매 업주들의 반발이 거세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은 (폐쇄를) 원하는데 여태 안 됐어. 올해 안에는 힘들다고 봐. 코로나 이후로 저기(집결지)도 장사가 안된다지만 남자들은 계속 와. 오늘 봤지?”

김경일 파주시장이 지난 2일 시장 집무실에서 ‘성매매 집결지 정비계획’을 새해 1호 공식문서로 결재하고 있다. ⓒ파주시 제공
김경일 파주시장이 지난 2일 시장 집무실에서 ‘성매매 집결지 정비계획’을 새해 1호 공식문서로 결재하고 있다. ⓒ파주시 제공

파주시는 파주경찰서와 함께 성매매집결지정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부시장을 총괄위원장, 복지정책국장과 주택건축국장을 부위원장으로 삼고 집결지 폐쇄를 본격 추진 중이다. 시는 경찰과 합동 현장 단속, 불법 건축물 이행강제금 부과와 행정 대집행도 예고했다. 지난주 단속으로 위반 업소 1곳을 적발했다.

파주시는 2020년 여성가족부로부터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이래로 전문가, 여성단체 대표, 시민으로 구성된 ‘여성정책 전문 자문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성평등 정책 논의 과정에서 성매매 집결지 폐쇄 필요성이 대두됐다고 한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여성신문에 “여성인권이 유린되는 참담한 현실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겠다. 불법 성매매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령이 2004년 제정됐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성매매 집결지는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여성인권 회복을 이루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현안”, “파주시장으로서 확고한 의지이자 미래를 위한 마땅한 결정”이라고도 했다.

또 “성매매 집결지가 위치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지역민은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며 “아이들에게 성매매 집결지의 존재는 고향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을 야기하고 올바른 성평등 인식의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인권 보호와 홀로서기 지원, 지역사회 내 성평등 인식 확산 노력도 약속했다. 파주시는 자활지원 조례 제정을 준비 중이다. 김 시장은 “성매매 집결지의 완전한 폐쇄는 성매매 피해 여성이 온전히 사회로 복귀하는 순간까지”라며 “성매매 피해 여성의 자립에 필요한 지원을 강구하고 시민의 의견을 기반으로 집결지 공간의 적절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겠다. 여성인권 회복의 터전이자 성평등 인식을 확산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깊이 고민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경일 시장과의 인터뷰 질의응답 전문 ▶

김경일 파주시장 “성매매집결지 폐쇄, 여성인권 회복 위한 가장 중요한 현안”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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