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인 수영계 레전드 김세진씨
경영학 전공 후 법무법인 입사
“파도와 심장소리 그립지만…
공적인 일에 이바지해 기뻐”

‘로봇다리 수영선수’. 2009년 5월 한 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김세진(25)씨에게 오랜 시간 동안 붙여져 있던 수식어다. 선천적으로 오른쪽 무릎 아래, 왼쪽 발목 아래, 오른손 두 손가락이 없는 그는 재활치료로 수영을 시작해 11살엔 자유형 400m 아시아 기록을, 13살엔 자유형 800m 세계기록을 세웠다. 2011년에는 뉴욕 허드슨강에서 열린 10km 장거리 수영에서 18세 미만 1위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2016년에는 패럴림픽이 아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수영마라톤 남자 10㎞ 최종예선에 나서기도 했다. 장애인 수영계의 ‘레전드’인 그는 리우 올림픽이 끝난 후 은퇴를 선택했고, 지금은 법무법인(유) 율촌 인사팀에 입사해 직장인으로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끔은 파도와 쿵쿵 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그립다”는 그는 올해 가슴 벅찬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청년, 김세진씨를 만났다. 

김세진 율촌 ⓒ홍수형 기자
수영선수였다가 현재는 법무법인(유) 율촌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세진 씨. ⓒ홍수형 기자

- 19살에 선수 은퇴를 결정했어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질병 문제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출전을 마지막으로 제 수영 인생의 매듭을 짓고 수영선수 김세진이라는 타이틀을 뺀 청년 김세진으로 살고 싶었어요. 제 이름 앞에 또 어떤 수식어를 만들어 갈지가 기대되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수영을 그만두고 또 다른 길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 선수 시절에는 비장애인 선수 대상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어요. 세진씨는 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제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안 해요, 못해요, 싫어요”라는 세 마디뿐이었어요.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가지지 못한 것보단 제가 가진 것을, 할 수 없는 것보단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어요. 제가 가진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세상에는 새롭게 시도하고 싶어지는 것들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도전이 또 다른 도전을 만들어 일반 올림픽 10km 마라톤에도 출전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게 만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는 저의 단점보단 장점을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 15살에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에 입학했다가 이후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어요. 전공을 바꾼 계기가 있나요.  

“올림픽 출전 이후로 은퇴를 결심했던 이유는 운동을 벗어나 더 넓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또한 세상을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성장을 위한 또 한 번의 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뉴욕주립대학교로 편입해 경영관리학(Business Management)을 공부했습니다.”

- 지난해 법무법인 율촌 인사팀에 입사했죠. 

“2022년 3월에 법무법인 율촌에 입사해 곧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제가 살아온 삶과 학력과 능력을 인정해 주셔서 율촌 인사팀에 입사하게 됐어요. 율촌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삶과 사람을 배우고 싶어요.”

- 수영선수의 삶에서 직장인의 삶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차이가 있나요. 

“가장 큰 부분을 말하자면 ‘맥박’인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했던 11년 동안 매일 훈련하며, 맥박이 분당 180까지 마치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이 뛰어야 그날 하루가 끝이 났었어요. 지금은 아침부터 밤까지 맥박이 크게 변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가끔은 파도와 쿵쿵 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그립습니다.”

-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데 수영선수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운동이 직장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끈기와 인내심이 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견디고 버티는 힘이라고 봐요.”

2016년 6월 6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국제수영연맹(FINA) 올림픽 최종예선전 출전을 위해 포르투갈 세투발로 출국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세진 씨. ⓒ뉴시스·여성신문
2016년 6월 6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국제수영연맹(FINA) 올림픽 최종예선전 출전을 위해 포르투갈 세투발로 출국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세진 씨. ⓒ뉴시스·여성신문

- 세진 씨가 성장하는데 어머니 양정숙 씨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되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참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함께 해주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할 든든한 가족의 지지와 사랑과 희생이 서로서로 맞대고 있는 사람인(人)의 모습처럼 우리를 견디게 해주었어요.”

- 어릴 적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고 싶다고 했었어요. 유엔기구 입사를 꿈꾸시는 등 공적인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신 바 있는데요. 2023년 현재, 김세진씨의 꿈은 무엇인가요.

“현재는 율촌 인사팀에서 다양한 공익 활동 프로그램, 행사 등을 기획하며 공적인 일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꿈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의 목표는 가슴 벅찬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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