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연쇄살인범의 “몸 함부로 굴리지 말라!” 경고에 분노…

자신을 버린 여자들에 대한 복수심보다 몸 팔아 먹고사는

여자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우월감이 연쇄살인으로

연쇄살인자의 손에 참혹하게 죽은 여성이 열 명이나 되는데 경찰은 그 동안 실종신고도 받지 않았느냐고 기자가 물었다. 대답은 그 여성들 대부분이 즉시 신고할 만한 정상적인 가족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은 혹시 가족이나 친구가 신고를 했다고 해도 납치나 유괴가 아닌 단순 가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경찰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대도시의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고, 그들의 직업이 그렇다. 아니 직업이 그렇기에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게 더욱더 어려웠을 게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살인의 표적이 된다. 영국의 전설적인 연쇄살인자 잭 더 리퍼도 그런 여성들만을 노렸고 끊임없이 만들어진 수많은 연쇄살인 영화에서도 피해자들은 거의 그런 여성들이다. 현실에서건 영화에서건 누군가가 한 사람이라도 불의에 죽거나 살해를 당하면 이내 몸부림치며 우는 가족들이 모여들지만 그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 나가도 슬피 울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해결되어야 할 사건으로서만 취급된다. 그런 유의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대신 분노와 허망함을 느낀다.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느낀 건 공포가 아니라 분노와 허망함이었다. TV에 비친 범인은 얼굴 전체가 마스크로 덮여 있었다. 마스크 밑에서 나온 목소리, 그는 여자들에게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을지도 모를, 범인에 대한 100백만 분의 1퍼센트쯤 되는 동정심이 모조리 말라버렸다. 그가 범행동기로 내세웠다는 자신을 버린 여자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몸을 팔아 먹고사는 여자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우월감이 그를 연쇄살인으로 이끌었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다(하긴 그는 또 부자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살인을 했다고 했지만 그가 죽인 부자들은 하나같이 힘없는 노인들이었다). 어느 나이건 가슴 아프지 않으랴만 죽은 여성들이 거의 다 20대였다는 사실에 나는 더 허망하다. 그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출장마사지라는 성매매로 밖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을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 동안 성매매를 둘러싸고 이루어져온 온갖 논란이 한꺼번에 뒤죽박죽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궁극적으로야 성매매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지금 단계에서 시급한 건 성매매로 먹고사는 수많은(말 그대로 숫자가 엄청난) 여성들이 그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룬다는 건 고사하고 최소한 일상적인 생명의 위협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라고 해서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까지 법의 바깥에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엄연한 국민이니만큼 국가는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책임이 있다.

참혹한 시체로 발굴된 그들은 이제 가족에게 어떤 존재로 돌아갈까. 홍수처럼 넘쳐나는 뉴스의 어느 한 구석에도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한 피해여성의 언니가 기자에게 자신의 동생이 무얼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결코 성매매를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기자들이 피해여성들을 모두 성매매 여성으로 몰아붙인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그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을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그 언니의 심정에 이해는 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죽은 여성들이 더 가엾다. 살아서 소외당한 삶은 죽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나는 그 언니가 겉으로는 그렇게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다를 거라고 믿는다. 혼자 있을 땐 땅을 치고 통곡할 거야.

젊으나 젊은 20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그 여성들이 가엾어 이 여름 나는 한없이 우울하다. 도대체 세상이 나아지기 위해 이 나이 되도록 내가 한 일이 뭐지? 기껏 이 따위 넋두리나 늘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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