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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옛 선조 여성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혹시 화려한 궁궐 속 중전마마나 대비마마, 아니면 현모양처 신사임당, 사악한 장희빈 등 이미 고정화된 시선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책 두 권이 잇따라 출판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환관과 궁녀>와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속에서 우리 여성 선조들의 삶을 만나본다.

<환관과 궁녀>

-'왕의 여자'보다는 '여성 공무원'

이 책은 화려한 궁궐 역사의 그림자로 묻혀 있던 환관과 궁녀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무수리, 상궁, 나인 등 어린 시절 차출되어 궁녀가 되는 그들은 왕의 '승은'을 기다리는 '왕의 여자'로만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 공무원'으로 평가되는 것이 옳다. 고종의 왕명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에 따르면, 궁녀란 궁중에 머물면서 일정한 지위와 월급을 받는 왕조시대의 여성들을 통칭하는 것이다. 엄연히 종 9품에서 정 5품까지 10단계의 품계가 있었고, 품계마다 고유한 호칭이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궁녀가 존재하긴 했지만 이들에 대한 작호와 품계가 제대로 마련된 것은 조선 왕조에 이르러서다. 입궁한 후 15년이 지나면 관례를 올려 정식 나인이 되었으며 이때부터는 월급과 품계를 얻는다. 이후로 15년이 지나면 상궁이 되어 6품 이상의 벼슬을 받고 급여도 많이 오른다. 궁녀들은 환관처럼 가정을 이루고 살지는 못했지만, 상궁의 최고 직위였던 제조상궁에게는 실제 조정의 재상들조차 허술하게 대할 수 없었을 만큼 위세도 당당했다. 궁녀들은 매우 조직적이고 영향력도 강했으며 역할도 다양했던 것이다. 박영규 지음/김영사/1만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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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다. 어여머리에 자주 원삼이차림에 위엄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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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밀, 침방, 수방의 견습 나인들인 생각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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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 시절에 창덕궁 서향각에서 찍은 사진으로, 가운데가 윤황후다. 황후 좌우와 맨 앞줄 네 사람은 상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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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상궁들. 네 명의 상궁이 함께 궁궐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들의 당당한 표정과 단정한 자태에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현모양처' 속에 '자유부인' 살다

조선시대 엄격한 가부장적 규범의 삶에 묶여 있던 여성들에게도 놀라운 면이 있었다.

이 책에서 조선의 여성들은 시대적 한계에 좌절하지 않았다. 신사임당은 자신이 죽어도 다시 장가들지 말라고 남편에게 당당히 요구했으며, 문인인 송덕봉은 “나는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으니 당신도 사위의 도리를 다하시오”라고 남편에게 일침을 놓기도 했다. 시인인 김호연재는 남편의 외도와 시댁식구들과의 불화를 겪으면서도 '자경편'을 저술해 주체적 입장에서 여성규범을 검토했고, 김금원은 남장을 하고 금강산과 그 일대를 여행해 '호동서락기'라는 기행문도 남겼다. 그는 또 여성시인을 모아 '삼호정시사'라는 문학 그룹을 조성하여 새로운 여성문화 공간을 만들었다. 박무영·김경미·조혜란 지음/돌베개/1만1000원

정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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