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선거구제 개편 논의 본격화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띄운 ‘중대선거구제’
소선거구제는 1등만, 중·대선거구제 여러 명
“선거제도 개편으로 정치 대표 다양성 확대?
중대선거구제만으론 기대하기 어려워”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여성신문

내년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것. 문제는 중·대선거구제 개편이 가져올 파장이다. 전문가들은 여성·장애인·청년 등 정치 대표성을 확대하려면 중대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여성할당제나 비례대표 의석 확대 의무화도 함께 개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띄운 ‘중대선거구제’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정치 양극화 문제 해법으로 ‘중·대선거구제’를 꺼내 들었다. 윤 대통령은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해왔지만 대통령 취임 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는 3월까지 선거 제도를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총선 1년 전인 2023년 4월(법정기한)까지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2023년 시무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정개특위에서 늦어도 2월 중순까지는 선거법 개정안을 복수로 제안하고 그것을 본회의를 통해 300명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회의 회부해서 3월 중순까지는 내년 시행할 총선 선거제도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점 찾는 데 난항 있을 듯

여야 정치권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합의점을 찾는데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의힘은 소선거구제의 취약점을 언급하면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어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들과 긴급회의를 마친 뒤 “소선거구제가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됐다”며 “가장 큰 문제는 거대양당의 진영대결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점, 득표에 따라 의석수를 가지지 못해 민의를 왜곡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다만 “워낙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지역구 사정에 따라 입장이 달라서 의견 모으기가 대단히 어렵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향후 논의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비례대표 강화를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부산시 연제구 부산시당에서 열린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선거구제의)장점으로는 소수자들 진입이 가능하고 신인 진출이 용이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득권, 소위 유명하고 경제력이 큰 사람들만의 장이 될 수도 있다”며 “이런 장단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당내 의견을 모아가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4일 최고위원회의 후 진행한 질의응답에선 “다당의, 제3 선택이 가능한 정치 시스템이 바람직하다는 말씀드렸고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 비례대표를 강화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한다. 전에 저희가 정치개혁, 정치교체를 말할 때도 비례대표 강화로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사전투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기표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사전투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기표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소선거구제는 1등만, 중·대선거구제 여러 명

선거구제는 단위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의원 수에 따라 나뉜다. 한 선거구에서 1명을 뽑으면 소선구제, 2~4인 이상이면 중선거구제, 5인 이상은 대선거구제로 분류된다. 중·대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 안에서 2~3명의 대표를 뽑는 제도다. 우리 국회의원 선거에선 5대, 9~12대 총선은 중대선거구제로 치렀다.

13대 총선 후 현재 우리나라는 한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기록한 의원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영국·캐나다 등 가장 많은 선진국이 적용하고 있다. 소선거구제의 단점으론 1표라도 많은 후보가 당선되기 때문에 사표가 발생한다. 따라서 민심의 반영이 충분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A 후보가 51%, B 후보가 49%를 각각 득표했을 때 단 2%p 차이로 A 후보가 당선되고 떨어진 후보를 지지한 49%는 사표가 된다.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게 될 경우 소선거구제에 비해 사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인물 선택의 범위가 넓어진다. 단점으론 선거비용이 증가하고 이념 성향이 강한 지역에선 진영 구도를 약화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도 전체 국회의원의 숫자에는 변함이 없다. 기존 소선거구 여러 개를 합쳐서 1개의 중대선거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대선거구제가 여성·장애인·소수자·정치 신인 등의 정치 대표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대선거구제로 인해 여성들의 정계 진출이 활성화될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예를 들어 5명을 뽑는 지역구가 있다고 할 때 각 정당은 최소 8명 이상의 후보를 공천할 텐데 여기에 여성이 최소 두 명 이상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본 선거보다 공천받기가 더 어렵다’는 여성 정치인들의 현실이 상당 부분 교정될 수 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해도 지역 갈등이 줄어드는 효과는 지극히 미미할 것이고, 군소 정당의 국회 진입이 용이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근거가 지극히 미약한 주장임”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 대표 다양성 확대? 중대선거구제 개편만으론 어림없어”

“중·대선거구제에 여성할당제·비례대표 의석 확대 의무화해야”

선거제도 개편만으론 정치 대표 다양성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할당제나 비례대표 의석 확대 의무화 등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괄목할 변화가 있다는 것.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중대선거구제와 함께 여성할당제·비례대표 의석 확대가 의무화되지 않으면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중대선거구제는 선거 비용이 많이 들고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며 “조직과 재원이 부족한 여성·장애인·소수자·정치신인 등에겐 좋은 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미 거대 양당의 독점적인 지배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이념적 성향이 강한 지역에선 지금과 비슷하게 투표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도 “중대선거구제로 여성과 소수자의 대표성이 높아지지 않고 소수정당 진입 가능성도 크게 높지 않다”며 “민주당이 경상도에서 의석을 얻고 국민의힘이 전라도에서 의석을 얻는 정도의 효과만 있어서 거대양당에 유리한 제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어떤 선거구제를 해도 정당 차원에서 공천 규칙에 성별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를 의무화하지 않는 한 선거제도만으로 대표의 다양성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물론 진보정당은 대표의 다양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있어 소수정당이 진입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개혁되면 다양성이 지금보다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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