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정치 에세이 출간
현실처럼 온라인 속 범죄 막을 법안 필요
기득권 586·폭력적 팬덤·온정주의 버려야
“다음 총선 아니더라도 길게 보고 간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홍수형 기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홍수형 기자

‘과이불개’(過而不改).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2022년 정치권 사자성어로 뽑은 것으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사자성어가 현재 민주당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철옹성 같은 기득권 586의 벽이 공고해지고 폭력적인 팬덤으로 인해 국회의원이 지레 겁을 먹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비겁함, 그리고 내 편이라면 봐주는 온정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상대책위원장 사퇴 이후 ‘솔루션2045포럼’에서 활동 중이다. 솔루션2045포럼은 △지속가능성, △디지털 사회, △글로벌 네트워크, △새로운 사회보장, △차별 해소의 다섯 가지 주제를 놓고 각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논의한다. 공식 발족에 앞서 박 전 위원장은 3일 1회차 세미나에서 강연했다. 박 전 위원장은 “포럼은 광복 100주년이 되는 해에는 지금보다 더 평등하고 차별이 없도록 만들어보자는 취지”라며 “미래를 책임질 청년과 국민이 모여 함께 대안을 찾고 소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의 영입 인재로 들어와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고 당 대표 출마에 좌절하기까지 짧고 굵은 정치 경험을 담은 책이 나왔다.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박 전 위원장은 초고를 수정할 때 82일간 정치권에서 겪은 일들이 트라우마로 다가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상처로 다가오고 힘들다 보니까 ‘내일 해야지’하고 시간이 지체된 것도 있다”며 “또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 등 정치권에서 나온 목소리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제 목소리를 보태면서 집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여성신문 사옥에서 만난 박 전 위원장은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하며 ‘박지현의 정치,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썼다.

-민주당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부와 국민의힘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전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민주당이 전혀 반성하지도 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아서 국민 앞에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70년 역사를 가진 정당으로서 중산층과 서민 옆에 있던 정당이었고 아직도 그 꿈을 가지고 정치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희망이 거의 안 보이는 상황이 돼버렸을 뿐이지 저는 그 희망이 다시 빛을 발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에 비판도 사랑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부 총질’이라면서 비판하는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오히려 민주당을 더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이 안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사를 보면 어떤 혁신을 할 것인지 눈에 그려집니다. 지금의 정치혁신위원회 인사 구성이 그렇습니다. 무엇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뼈를 깎는 각오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 시기에 폭력적인 팬덤의 이야기를 듣는 의원이 정치혁신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또 민주당의 문제 중 하나가 외부의, 국민의 목소리를 안 듣는다는 것인데 위원에 국회의원이 더 많이 앉아 있습니다. 국민과 의원 5:5 비율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했는데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비대위원장 시절 당내 성비위 사건에 불관용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발언 논란과 관련해 최근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당시 사과하고 넘어갔으면 하루 만에 끝날 일이었는데 계속해서 변명했고 국회의원의 위력을 사용해서 보좌진들의 입을 막은 사실이 드러난 문제였습니다. 김남국 의원이 경찰 조사에서 성희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회의는 김 의원과 최 의원 둘이 대화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보좌진과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화상 회의의 특성을 보다 고려했다면 다른 결정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내부 총질한다”며 비판받던 비대위원장 시절, 이원욱 의원이 적극 지지했습니다.

“당시 이 의원께 감사했습니다. 여의도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이 의원께서 중간에 시간이 뜰 때 카페에 있지 말고 사무실에서 업무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셨습니다. 대외적으로 응원의 메시지도 많이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이 있다면 내적으로 전화나 문자로 연락해주시고 따로 밥을 사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은 저와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왜 박지현이랑 노냐’면서 댓글이 달리기도 했고 제가 한 간담회에 참가했더니 그 간담회를 열었던 단체에 항의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요즘에도 악성 문자가 옵니까?

“어지간한 것은 거의 차단했고 심한 내용은 고소했는데 기사가 나니까 문자가 더 이상 안 옵니다. 다만 어이가 없던 것은 간혹 ‘나 박지현한테 고소당했다’고 SNS에 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심한 말 안 했는데 고소당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게 오히려 더 화났습니다. 심하지 않다고 한 내용 중에는 ‘인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어야 한다’, ‘어렸을 때 아빠한테 성폭행당했을 거다’ 등 입으로 담을 수도 없는 말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땐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습니다.”

-청년 정치인을 ‘토큰’처럼 생각하는 기성 정치를 바꿀 방안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한국에서 청년들이 정치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뭘 하려고 하면 ‘어린 것이 건방지다’, ‘넌 젊으니까 다음에 해’라는 시선과 말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제가 많이 들었던 말은 ‘정치 잘못 배웠다’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성 정치인이 청년들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교묘한 심리 조종) 합니다. 이런 가스라이팅이 계속되면 그러려니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을 두고만 본다면 586, 686, 786까지 갈수록 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청년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이들을 몰아내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줄 서기, 말 잘 듣기, 순번 기다리기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죠. 도전적이고, 개혁적이고, 기득권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당 또한 청년의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보장해야 하고 외국의 정당처럼 청년들이 그 당의 레드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후 위기, 블록체인, 차별과 불평등 타파 등의 의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홍수형 기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홍수형 기자

-총선에 도전할 의향이 있습니까?

“2030대는 전체 유권자 중 34%지만 국회 내 청년 비율로는 4.4%에 불과합니다. 지금 민주당 체제에서 제게 공천을 줄지 안 줄지 우려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지만 저는 길게 보고 가려고 합니다. 다음 총선이 아니더라도 지방선거가 될 수 있죠.”

-선망하는 정치인이 있습니까?

“아직은 딱히 없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을 좋아하지만 미래의 박지현이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지금의 제가 잘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정치는 무엇입니까?

“‘디지털 기본법’을 만들고 싶습니다. 헌법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것은 1987년으로 35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에는 디지털 세상에서의 활동이 없었으니까 관련된 헌법도 없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범죄라고 규정하는 것들을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법들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못 하는 것이 없어졌고 그만큼 범죄도 자주 발생하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법안은 미비합니다. 법을 구축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비대위원장 다음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어떤 직을 목표로 한다기보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자문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눈치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쳐도 직진하는 정치를 박지현의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께서 살기 좋은 삶을 만들어놓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여성신문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는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가 제 역할을 잘해야 하는데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저는 여성끼리의 연대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직을 맡거나 역할을 하려고 할 때 따라붙는 온갖 꼬리표와 같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여성끼리의 연대를 조금 더 구축해서 보여주는 2023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199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2019년 ‘n번방’ 사건을 파헤친 ‘추적단불꽃’의 활동가 및 기자로 일하다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목표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22년 3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돼 82일간 당을 이끌었다. 2022년 타임이 뽑은 ‘올해 떠오르는 인물 100인’, BBC ‘올해의 여성 100인’, 블룸버그 ‘올해의 5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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