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순결성과 도덕률만으론 치료할 수 없다

부부간 상호만족 결핍서 시작새로운 적응과 배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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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혹자는 동물적인 본능을 가진 인간에게 외도를 하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외도란 어찌 보면 일부일처제라는 어거지 같은 제도하에서는 필연적인 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본능이 실제 행동화되었을 때의 결과들을 -특히 소아, 청소년을 상대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당사자들이 아닌 자녀에게까지 미치는 영향들을- 지켜볼 때 이런 욕구 지상주의에 찬성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다.

◀G피카소, '남근', 1903. 정체성에 대한 회의나 자신감 결여가 '외도'라는 정신병리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외도에 대한 극단적 사고보다는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치료가 우선이다.

출처·<페로티시즘>(김영애/개마고원)

필자가 남성이므로 직, 간접 경험으로 아무래도 남성들 쪽의 외도를 기술하는 편이 생생한데다가, 아직까지 사회문화적으로도 외도에 취약한 것은 남성 쪽일 테니까 여기서는 남성외도를 중심으로 다루겠다.

우선 외도는 왜 일어날까? 이는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결혼관계가 당사자들이 결혼 전, 혹은 후에 기대한 것만큼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즉 부부간의 육체적, 정신적인 상호 만족을 주는 관계가 무엇에 의해선가 막혔을 때 이 만족을 상대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에게서 찾으면서 생기는 일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육체적, 정신적인 만족을 저해할까?

우선, 물리적 요건은, 흔한 예가 요새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기러기아빠들처럼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야 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 생기는 외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심리요,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인지 대개 물리적인 요건이 호전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고, 서로를 용서하고 감정적 앙금이 남는 것도 적은 편이다.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에 대한 감정적인 끈을 자주 확인하고(편지, 전화, 이메일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기회만 나면 열리를 제치고 만나는 것이 제일 좋은 예방법 아닐까?

두 번째론 정서적 차단을 들 수 있다. 아마 우리 사회 속에 가장 흔한 경우가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원 A씨는 부인 B씨와 2~3년 연애 후 결혼을 했다. 서로가 '그래도 저 사람이 내 마음을 잘 헤아려 줄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이게 왠걸? 하고 보니 날이 갈수록 안 맞는 부분 투성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A씨는 '아 내가 과연 누구를 위해 상사에게 욕먹어가며, 업무에 쫓겨 가며 뼈 빠지게 돈 버나, 이 고단한 삶 속에 내가 기댈 자란 누구란 말인가?'라는 생각에 점점 집에 대한 소속감을 잃는다. 그리고는 동호인 활동에 시간을 많이 투여하고, 어느덧 같은 회원인 C양에게서 그동안 부인에게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을 포근히 감싸주는 마음을 읽는다.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성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 예의 핵심은 A씨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부인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에 있다. 즉 A씨는 효자로서 도리와 책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기서 오는 부담감을 부인이 함께 짊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부인의 시부모와의 관계가 그런 바람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겠는가? 부인 역시 새로운 가정에서 남편이 자신들만의 공간을 위해 전심전력을 해줄 것을 바랬을 것이다. '효'라는 강한 사회적 문화적 가치관의 압박 속에서 A씨가 겪게 되는 자식 대 남편 및 아빠라는 정체성 갈등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옷을 갈아입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이 경우 양쪽이 시간을 가지고, 서로에 대해 결혼 전에 가졌던 기대의 현실성을 따져보고,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서로가 일정부분 수용하거나 미루어 놓고, 해결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함께 해결하는 것이 방법이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결국 외도의 길에 빠지겠다 싶으면 전문가를 찾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개인 정신병리적인 요건이 있다. 여기에는 의처증, 의부증, 외도중독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위의 두 예처럼 외도가 부부 상호 관계의 문제에서 발생했다기보다는 이를 겪고 있는 당사자의 정신병리가 일차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증상들의 심리적인 측면에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자신감 결여)가 내재해 있다. 즉 자신이 배우자로서의 자신감이 없기에, 실제로 정직한 상대가 부정을 저지른다는 헛된 생각에 빠지는 것(의처증)이고, 자신이 남성으로서 자신이 없기에 부인 이외의 수많은 여자에게서 이를 확인해야하는 것(외도 중독)이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주변에서 잘 설득해 일단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는 것이 최선이다.

'역시 외도를 한 인간은 인간 말종이야'라든가 '나 혼자 하는데 누가 뭐래' 라든가 하는 극단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외도에 대해 인간적 안목에서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다. 이러는 편이 결혼의 순결성과 도덕률을 강조하는 것 보다 실제 외도의 역기능을 가장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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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

가족사랑 서울신경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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