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여성작가들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내 생에 꼭 하루뿐인…> 등 불륜 통해 정체성 탐색

90년대 30, 40대 여성 작가들의 주요 소재는 여성들의 외도를 통한 삶의 일탈. 이를 빗대어 '불륜 소설'이란 말조차 나왔을 정도다. 대부분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하는 이들의 소설은 껍질만 남은 부부나 가족 관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에게서 돌아서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가부장제가 그녀에게 강요했던 피상적인 관계와 일방적인 희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륜을 선택하고 일부일처제에 냉소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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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씨는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노골적으로 사랑은 유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이라도 좋아, 사랑한다고 속삭여 줘”라고 외치는 진희는 30대 중반의 이혼녀로 뱃속의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모를 정도로 동시에 여러 명의 남자를 만난다. 평범한 주부 윤선도 연하의 유부남을 만나 은밀하고 사랑을 나눈다. 이들에게 사랑은 '사랑한다'는 속삭임만 있으면 충분한 흥분제와 같은 것이다.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춤을 추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고 애타는 눈길을 보내는 것은 일부일처제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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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효신씨는 소설 <마흔, 사자처럼>에서 15년만에 다시 만난 학창시절 애인과 또다시 사랑의 감정에 빠져드는 유부녀의 좀더 전형적인 '연애'를 묘사한다. 그녀는 남편이 “제발, 가정을 무너뜨리지는 말자”고 하소연해도 “이제 와서 이혼이고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며 별거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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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애'의 원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전경린씨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평온한 가정을 꾸려가던 미흔에게 갑자기 찾아온 남편의 내연의 여인은 미흔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놓는다. 그 충격으로 시골로 이사한 미흔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 '섹스를 하되 사랑은 하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은밀한 게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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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인씨의 작품 <특별한 선물>은 세련된 미모와 지성을 갖춘 삼십대 후반의 한 여자 소설가가 서해안 포구의 어느 횟집에 찾아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우직하고 착한 주방장 '한수'를 일시적인 성적 유희 상대로 즐기지만 한수는 여자에게 순정을 바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누군가를 향한 '순정'은 '여자의 본능'으로 고착화됐지만 기실 그것은 가진 것 없는 약자가 익혀야 하는 일종의 습관인 것이다.

이처럼 여성 작가들은 불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하는 불륜 코드에 대해 “통속으로 치닫는 소설”이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씨는 “남성 평론가들이 유독 여성 작가의 불륜 소설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가정에 매여 있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외도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남자는 외부 세계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해석했다. 또 고갑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운영위원은 “남편이 아닌 남자에 의존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라고 해석했다. 즉 여성 작가들이 그려내는 일탈은 “여성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가부장 제도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서김현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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