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다른 정치] 2023년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김은주의 다른 정치] 2023년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 승인 2022.12.31 10:10
  • 수정 2022-12-29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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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2022년 10월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교수신문은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뽑았다. ‘과이불개 시위과의(是謂過矣)’, 즉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2022년 정치판은 여야를 불문하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듯 상대방이 더 잘못했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감싸고 정당화하기에 바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자들이 없다. 잘못은 국민의 안전관리의 책무를 방기한 정부에게 있는데도 벌은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받고 있다. 차마 글로 옮기기도 역겨운 막말들이 정치인들과 진영팔이로 먹고사는 진영꾼들의 입을 통해 배설되고 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정치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잘못을 하고도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잘못을 인정해야 반성도 하고 개혁도 하고 고치기라도 하는데 현 정치판은 눈에 훤히 보이는 잘못인데도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려니 진실과 진실을 말하는 자들에 대한 혐오가 난무한다. 이런 정치판에 대한 진단으로 과이불개는 과분한 대접이다.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는 형국은 마치 사슴을 가리켜 말(지록위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여 거짓이 진실인 양 행세하는 형국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진시황 사후 환관이었던 조고가 허수아비왕을 옹립하고 권세를 휘두르기 위해 자신을 반대하는 신하들을 가려내기 위해 사용했다는 일종의 감별기법이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고 ‘사슴’이라고 정답을 말한 신하들은 제거했다고 한다.

2022년 여성정책은 ‘지록위마’

적어도 여성계, 즉 여성운동을 비롯한 여성주의, 여성 및 성평등 관련 정책 전반에 있어서 2022년의 정치는 ‘과이불개’보다 ‘지록위마’의 정치에 가깝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고서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반지성과 탈진실의 정치가 그것이다. 모든 객관적인 지표들이 여성들이 처한 구조적 차별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음에도 성평등은 실현됐고 여성정책은 공정성을 훼손하는 정책이라고 호도했다. 마치 사슴을 말이라 우기듯이 기울어진 운동장과 유리천장의 존재를 부인하고, 차별의 문제를 능력의 문제로 치환하여 차별이 차별이 아니라고 우긴다. 여성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일 뿐, 그런 건 없다고.

2022년 여성계에 불어 닥친 지록위마 정치의 정점에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는 처음부터 정부 조직개편의 문제가 아니었다. 20대 남성들의 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성별 갈라치기 선거 전략의 일부였고 선거가 끝난 지금은 혐오정치를 선동하는 구호가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집권여당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에는 귀를 닫고 그저 주문을 외우듯 여성가족부 폐지만은 외친다.

2023년도에도 지록위마의 정치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어쩌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과 후보자 발굴을 해야 하는 정치권에서는 지록위마 식의 감별기제들이 한층 더 기승을 부릴 것 같다. 이미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는 교과서에서 성평등, 성소수자, 재생산, 섹슈얼리티라는 단어를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부서 이름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2023년은 새해 같지 않은 새해가 될 것이다. 적어도 여성계에게 있어서는 그러할 것이다. 사슴에 이어 어떤 진실들이 왜곡되고 희생될지 모른다. 토끼를 말이라고 우길지 아니면 호랑이를 고양이라 우길지. 어찌 됐든 탈진실의 시대, 그 최전선에 성평등과 페미니즘(여성주의)가 서 있다.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거짓이 참을 이길 수 없도록….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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