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주에 ‘유동룡 미술관’ 개관한 유이화 관장
제주 서쪽 저지예술인마을 소재…‘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 전시
전시 통해 영감 받고 오리지널리티 회복되는 복합문화공간 기대

유동룡 미술관 1층 라이브러리 ‘먹’의 반원형 서재에 선 유이화 관장. ⓒ여성신문
유동룡 미술관 1층 라이브러리 ‘먹’의 반원형 서재에 선 유이화 관장. ⓒ여성신문

“아버지의 건축철학을 거스르지 않고,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어요.”

지난 12월 6일 예술인들이 사랑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저지예술인마을에 ‘유동룡미술관(이타미준뮤지엄,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이 문을 열었다. 미술관은 연면적 약 675㎡, 지상 2층 규모로 설계한 건물 내부에는 3개의 전시실과 라이브러리, 교육실, 아트숍과 티 라운지가 있다.

재일교포 건축가 고(故) 유동룡(예명 이타미 준, 1937-2011)의 미술관은 그의 딸이자 공간을 총괄설계한 건축가 유이화(48)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 이사장의 존경심이 오롯이 스며있다. 유 관장은 부친의 초기 작품 ‘어머니의 집’과 제주 초가의 모습에서 착안했다. 아버지와 함께 곤축가로서 열정을 표출했던 제주는 그에게도 특별하다. 3년 동안의 준비를 마치고 개관하자마자 제주도 내외 방문객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미술관에서 유 관장을 만났다.

“제주는 아버지의 제2의 고향이자 건축자로서 절정의 작품을 남긴 곳이었고, 제주의 바람, 하늘, 땅, 바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곳입니다. 언제나 제주도 바닷가에 소박한 작업실을 마련하고 파도처럼 떠나고 싶다고 하셨죠. 아버지가 사랑하는 이곳에 미술관을 조성할 수 있어 뿌듯합니다.”

제주시 한림읍 저지리 예술인마을에 자리잡은 유동룡미술관. ⓒ유동룡미술관
제주시 한림읍 저지리 예술인마을에 자리잡은 유동룡미술관. ⓒ유동룡미술관

유 관장은 “설계의 시작과 끝은 ‘아버지의 철학’이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조응하는 방식, 지역의 풍토와 역사를 고민하며 건축을 풀어갔던 아버지의 뜻을 늘 염두에 뒀다”는 것. 아버지로서 딸을 다독여주는 친절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건축가였던 딸을 동료로 인정했던 아버지를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동시대 창작자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분입니다. 이 공간도 앞으로 다양한 창작자와 건축가의 꿈을 꾸는 미래세대가 사랑하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유 관장은 미술관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자신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일깨우고 사유할수 있도록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고 있다. 앞으로 이타미준 클래스에서는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수업이 열리며 제주도 내 초등학생을 위한 건축 수업이 열릴 예정이다.

현재 첫 전시로 열리고 있는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은 아버지가 걸어온 40여년 건축 작업을 회고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번 전시회는 세상의 흐름에 영합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그의 건축을 건축의 소재와 제주도와의 인연, 두 가지 주제로 살펴보고 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40여 년의 건축 작품이 소재를 중심으로 소개되어 조형의 순수성과 본질을 추구한 건축이 흙, 돌, 나무와 같은 원초적 자연을 거쳐 다시 대지라는 근원의 세계로 귀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제주에서 건축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풀어나갔던 이타미 준의 절정의 작품을 소개한다. 자연과 동화되어 제주의 풍토를 담담히 반영한 ‘포도호텔’과 ‘수·풍·석 미술관’이 그 대표작이다. 또 바람과 하늘에 담긴 자연의 힘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방주교회’같은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2층 전시실 내부. 이타미 준의 대표적인 작품들의 스케치, 모형,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동룡미술관
2층 전시실 내부. 이타미 준의 대표적인 작품들의 스케치, 모형,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동룡미술관

세 번째 전시실은 영상전시실로 이타미 준의 인터뷰 영상과 여러 건축가들이 말하는 이타미 준에 대한 기록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관람 후에는 1층의 라이브러리와 티 라운지에서 사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먹의 공간’이란 이름을 갖는 라이브러리에서는 아버지가 쓴 책과 그가 영감 받은 작가들의 책을 볼 수 있다. ‘바람의 노래’라는 이름의 티 라운지에서는 평소 차를 즐겨 마시고 손님들에게 정성스레 차를 대접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전시 관람을 마치면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차와 디저트를 경험할 수 있다.

유 관장은 “‘보는 미술관’에서 ‘공감각적 경험을 통해 사유하는 미술관’으로 느끼도록 했다”고 말했다. 배우 문소리 정우성, 아이돌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의 목소리로 한국어 도슨트를 경험하고, 영어도슨트는 에스파의 지젤이 함께 했다. 작품을 하나씩 읽어주듯 친절하고 간결하게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재일 제주인으로 누구보다 아버지의 삶을 공감해줄 수 있는 양방언의 음악이 미술관에 흐르고 있다. 건축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통해 유동룡에게 받은 영감을 표현한 바 있는 양방언은 유동룡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영감을 교류하고 친분을 나눈 친구이자 후배이다. 이들 모두 부친에 대한 존경심으로 어떤 보상도 없이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입장료는 성인기준 3만2000원. 다소 높아 보이지만 특별한 차와 기념품 티켓이 포함된 것이어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달 한 달 동안은 개관기념 10% 할인해주고 제주도내 건축 전공 학생들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는 미래의 건축가를 지원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뜻을 이은 것이다. 2023년 1월부터는 사전 예약 및 예매로만 미술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