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인지라는 괴물’이라니요?
[기고] ‘성인지라는 괴물’이라니요?
  •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장
  • 승인 2022.12.22 17:02
  • 수정 2022-12-22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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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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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 “첫 여사장”이 탄생했다고 한다. 국내 1위, 아니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에서 오너 일가가 아닌 여성이 실력으로 성공 스토리를 이뤄내더니, 삼성을 포함한 한국의 4대 그룹에서 ‘여성 사장’이 등장했다. 그동안 여성들에게 드리웠던 유리천장이 드디어 금이 간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 하다. 10여년 전, 성인지 교육을 위해 삼성전자에 간 적이 있는데, 강사가 강의실에 들어가고 나갈 때 수강생 모두 기립 박수를 쳐서 깜짝 놀랐다.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삼성’맨’의 자긍심을 강조하던 기업문화에서 여사장이 탄생했으니 개인적으로도 반갑기 그지없고, 여성 상급자가 턱없이 부족한 경제계에도 성평등 바람이 불어오나 싶어 한껏 기대도 커진다.

최근 우리사회는 일상생활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인식하고 성평등을 실천하려는 '성인지‘라는 용어가 매우 중시되고 있는데,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라 함은 남녀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성차별적인 언행을 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성찰하고 일상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인식을 말한다. 성별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되, 그러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고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관점(Gender perspective)’은 1996년 ‘여성발전기본법’에서부터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교계 대표적인 한 시민단체에서 ‘성인지’라는 용어가 수난을 겪고 있다. 올해 초, 자정과 혁신을 내세우는 불교계 진보적인 단체의 P상임대표는 단체의 새로운 변혁을 위해 여성지도자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다른 불교단체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던 여성을 공동대표로 영입했다. 그리고는 후임 상임대표를 의논하는 회의석상에서, 새로 들어온 여성대표가 자진해서 상임대표를 맡겠다고 발언했는데,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A운영위원이 ‘상임대표 면전에 대고, 이름은 모르는 젊은 여성분이, 상임대표를 할 의향이 있다는 말을 해서 속으로 참 당돌하다 생각했다’는 글을 남겼다. 졸지에 “당돌”한 여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교단 내 성평등 이슈를 다루는 단체들의 연대체 대표였기에, P상임대표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P상임대표는 ‘우리 나이에는 그럴 수 있다’며 사과조차 거부했고,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성차별 발언 당사자는 잘못이 없다며 법적 대응을 운운하다가 단체를 탈퇴해버렸고, 성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P상임대표는 성차별 이슈를 빌미로 자신을 모함하고 조직을 갈등으로 내몬다고 주장하며 상황을 더욱 확대시켰다. 그리고 단체가 제대로 활동을 못한 이유도 성인지로 흔들어댄 때문이고, 조직 내부 갈등도 성인지 후유증 때문이면서, 회원들을 니편 내편으로 편가르기에 이르렀다.

‘성인지’라는 용어는 후임 상임대표로 선출된 C여성 상임대표에 와서는 더욱 수난을 당했다. 그녀는 성차별 사건을 ‘침소봉대, 조작된 성인지 사건’이라고 정의를 내리더니, 두 발언 당사자가 ‘성인지 낙인’이 찍혀 영원히 구제받을 수 없는 인격이 되었다며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그녀가 회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올린 글에는 ‘과도하고 병적인 페미니즘’에 의해 주도되었던 “성인지라는 괴물”은 20년 전에 미국 전역을 흔들었지만 지금은 그 용어조차 사라졌다면서, 본고장에서 이미 퇴색한 운동을 뒤늦게 들여와 유행시킨 한국은 정치와 사회, 그리고 종교계까지 비극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급기야는 “당돌” 발언 당사자를 명예회복을 시킨다며 공동대표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우리나라 여성정책은 전 국민의 성평등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기반으로 여·남 모두에게 평등하게 예산이 집행되도록 ‘성인지 예산’을 세우고, 어떤 정책이 여·남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 ‘성인지 통계’ 등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공무원 등에게 성평등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성인지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사회는 남성중심 이데올로기가 뿌리 깊기 때문에, 초중고교는 물론 직장이나 단체에서도 성인지 교육을 활성화하고, 성인지감수성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성인지’는 성, 인종, 계층 등 각종 차별을 극복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존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정책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되는 영역은 가족, 직장, 교육, 정치, 과학 등 사회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데, 일상에서 성적 차이와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인식하고 성평등을 실천해야 하므로 각 개인의 성인지 감수성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성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성평등을 실천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평등과 해방을 주창한 붓다의 근본 가르침과 매우 상통한다. 불교는 심지어  인간뿐만 아니라 온 생명의 존귀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공동체를 유지함에 있어서도 대중들 앞에서 정기적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하는 “자자와 포살”을 기본 정신으로 삼고 있다.

성차별 발언에 대해 당사자에게 사과 한마디만 했으면 끝났을 것을, 전·현직 상임대표가 거의 1년 동안 사태를 확대 재생산하며 성인식 수준을 상식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퇴보시킨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멀리 강원도 횡성군에서는 여성친화도시 특화사업으로 ‘성평등 실천마을’ 현판을 부착한다고 하고, 기증자 의사를 따라 건립된 ‘제천여성도서관’에 대해 인권위원회는 남성 이용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권고했다는 소식도 있다. 사회는 이처럼 성평등을 향해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데, 변화의 흐름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문화지체현상을 보이는 불교단체의 모습이 부끄러울 뿐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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