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 전 개막
대표작·신작 등 140여 점 전시...작품세계 40년 조망
2023년 3월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키키 스미스, ‘황홀’, 2001, 청동, 170.8 × 157.5 × 66.7 cm. ⓒ키키 스미스, 페이스 갤러리 제공. 사진: 리처드맥스 트렘블레이.
키키 스미스, ‘황홀’, 2001, 청동, 170.8 × 157.5 × 66.7 cm. ⓒ키키 스미스, 페이스 갤러리 제공. 사진: 리처드맥스 트렘블레이.

늑대의 배를 가르고 몸을 꼿꼿히 세운 채 걸어나오는 여자(‘황홀’), 혀부터 항문까지 인간의 장관 전체를 주철로 제작한 작품(‘소화계’), 태아처럼 몸을 한껏 웅크린 사람(‘꿈’).... 

여성성과 신체를 다룬 작품들로 주목받은 미술가, 키키 스미스가 서울에서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을 연다. 오는 2023년 3월 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전이다. 작가의 40여 년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조각,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품과 올해 발표한 신작 140여 점을 모았다.

1954년 독일에서 태어난 스미스는 1980~1990년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왔다. 가정폭력, 임신중절, 에이즈 등, 여성성과 신체를 둘러싼 1980년대 미국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뤄 주목받았다. 그가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호명되는 이유다.

당시 스미스는 아버지와 여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겪으면서 생명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숙고하게 된다. 스미스는 자신이 신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단순히 여성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신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이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체 내 장기를 묘사한 작품, 인물의 전신상을 제작하면서 분절되고 파편화된 인체 표현과 더불어 생리혈, 땀, 눈물, 정액, 소변 등 신체 분비물과 배설물까지 가감 없이 다뤘다. ‘애브젝트(abject) 미술’, 혐오의 미학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가 직접 포즈를 취하고 촬영한 ‘라스 아니마스’(1997)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미술의 기존 재현 방식에 저항하는 여성주의적 태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사진 속 스미스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공격적이다. 털, 주름, 핏줄, 모공, 상처 등을 확대해 의도적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매끈하고 유혹적인 기존 여성 누드화와는 다르다. 제목 ‘라스 아니마스’는 영혼, 특히 비이성적인 부분을 지칭하는 스페인어 표현이다. 

키키 스미스, ‘라스 아니마스’, 1997, 아르슈 앙투카 종이에 요판 인쇄, 포토그라비어, 152.7 × 125.1 cm. ⓒ키키 스미스,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키키 스미스, ‘라스 아니마스’, 1997, 아르슈 앙투카 종이에 요판 인쇄, 포토그라비어, 152.7 × 125.1 cm. ⓒ키키 스미스,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키키 스미스, ‘하늘’, 2012, 면 자카드 태피스트리, 287 × 190.5 cm. 매그놀리아 에디션 직조. ⓒ키키 스미스, 페이스 갤러리 제공/사진 리처드 개리
키키 스미스, ‘하늘’, 2012, 면 자카드 태피스트리, 287 × 190.5 cm. 매그놀리아 에디션 직조. ⓒ키키 스미스, 페이스 갤러리 제공/사진 리처드 개리
키키 스미스, ‘지하’, 2012, 면 자카드 태피스트리, 293.4 × 190.5 cm. 매그놀리아 에디션 직조.  ⓒ키키 스미스, 페이스 갤러리 제공/사진 케리 라이언 맥페이트
키키 스미스, ‘지하’, 2012, 면 자카드 태피스트리, 293.4 × 190.5 cm. 매그놀리아 에디션 직조. ⓒ키키 스미스, 페이스 갤러리 제공/사진 케리 라이언 맥페이트

과감하고 도발적이던 스미스의 작품 세계는 2000년대부터 달라진다.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띠며 다양한 종교, 신화, 문학에서 도상을 취해 새로운 서사를 직조하기도 한다. 인간을 넘어 동물과 자연, 우주 등으로 주제와 매체를 확장하면서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미술관 측은 “작가는 삶과 죽음, 실제와 이상, 물질과 비물질, 남성과 여성 등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경계선 사이에서 뚜렷한 해답보다는 비선형적 서사를 택해 왔다”며 “느리고 긴 호흡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생명’에 귀 기울이며 상생의 메시지를 던지는 스미스의 태도야말로 과잉, 범람, 초과 같은 수식어가 익숙한 오늘날 다시 주목해야 할 가치”라고 평했다.

전시 제목 ‘자유낙하’는 스미스의 작품에 내재한 분출하고 생동하는 에너지를 가리킨다. 1994년에 제작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판화이자 아티스트북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이자 평면 매체에 입체적으로 접근한 스미스의 조각가적 면모를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대표작 중 하나로, 이번 전시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1994, 에치젠 고조 기즈키 종이에 요판 인쇄, 포토그라비어, 에칭, 드라이포인트, 84.5 × 106.7 cm. ⓒ키키 스미스,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1994, 에치젠 고조 기즈키 종이에 요판 인쇄, 포토그라비어, 에칭, 드라이포인트, 84.5 × 106.7 cm. ⓒ키키 스미스,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키키 스미스(Kiki Smith). ⓒChris Sanders
키키 스미스(Kiki Smith). ⓒChris Sanders
2023년 3월 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최되는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 전시장에 설치된 ‘푸른 소녀’(1998). 성모 마리아를 소녀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김윤재/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023년 3월 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최되는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 전시장에 설치된 ‘푸른 소녀’(1998). 성모 마리아를 소녀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김윤재/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미술관 측은 스미스의 작품세계에서 핵심적으로 발견되는 ‘서사구조’, ‘반복적 요소’, ‘에너지’ 같은 몇몇 구조적 특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소개한다. 특별한 동선이 없다. 전시 공간은 곡선형의 순환적 구조로 구성됐다. 작가가 본인의 예술 활동을 “마치 정원을 거니는 것과도 같다”고 한 데 착안했다. 전시장 곳곳을 향기 브랜드 ‘수토메 아포테케리’와 협업해 만든 향으로 채워 관람객들에게 후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독일의 영상 제작자 클라우디아 뮐러(Claudia Müller)가 스미스의 일상과 작업 현장을 담은 약 52분 길이의 다큐 영상, 여성 주인공 중심의 판화 14점으로 구성된 블루 프린트 시리즈도 공개된다.

출판사 열화당과 함께 전시 연계 단행본도 펴냈다. 이진숙(미술사가), 신해경(미학 연구자), 최영건(소설가)이 참여해 각각 에코페미니즘, 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스미스를 소개한다. 북토크, 10대를 위한 전시 감상 프로그램 ‘전시실의 사적인 대화’, 2023년 3월8일 세계여성의날 기념 행사도 준비 중이다.

스미스는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 서울에서 전시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라며 “40여 년을 돌아보는 이번 전시는 개인적으로 매우 뜻깊다. 관람객이 이번 전시를 통해 내적 자유로움을 느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백지숙 관장은 “다양한 공공 간 소통을 확장하고 동시대 미술의 형성에 기여해 온 거장을 주목하기 위해 준비했다”라며 “이번 전시와 함께 키키 스미스의 지난 40여 년 궤적을 따라 거닐며 작가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연말연시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로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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