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유협동조합이 오는 10월 1일부터 우유제품의 가격을 평균 5.4% 인상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23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우유 코너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내 수고가 들어간 만큼 아주 저렴하게 고급 식재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당면을 따뜻한 물에 30분 정도 불린 다음 송송 썰고 식용유, 간장, 설탕을 조금씩 넣어 팬에 볶는다. 부추는 잘게 썰고 소고기와 생새우살도 다져 양념한 후 재료를 모두 섞어 놓으면 준비는 끝이 난다. 이제 준비된 유부에 속을 넣고 데친 실파나 부추로 입구를 묶어주면 겨울철의 별미 어묵탕에 들어갈 수제 유부주머니가 완성된다.

내 수고 들어간 만큼 맛있고
고급 식재료 싼값에 얻는 일

사실, 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소고기는 원육을 사용하느라 기름 정리부터 해야 하는데 무딘 가정용 칼로는 정리도 다지기도 만만치가 않다. 재료 준비도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는 터라 유부주머니 50개를 만들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고 만다. 차라리 사 먹고 말지. 왜 고생을 사서 해요? 아내가 늘 하는 얘기가 그렇다. 내가 안쓰럽기에 하는 타박이지만 그러기엔 또 유부주머니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형편이 넉넉하다면 몰라도 어묵탕이 생각날 때마다 주문하기엔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몇 해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소고기 500g에 1만원을 포함해, 50개 제작 비용이 2만 원 정도, 재료도 영양도 비교 못할 정도로 좋지만 가격은 1/5 수준에 불과하다.

아내에게서 부엌살림을 빼앗은 지 20년, 그동안 아내 도움 없이 번역, 원고 청탁 등의 수입만으로 살림을 꾸려오고 있다. 당연히 늘 빠듯하기만 해서 장을 보면 되도록 저렴한 식재료를 집거나 마감세일 코너를 기웃거리기 일쑤다. 그래도 이따금 값비싼 재료에 눈이 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유부주머니에 들어갈 소고기가 그렇다. 돼지고기도 저렴한 뒷다리나 등뼈만 집어오면서 웬 소고기? 그래도 먹고 싶은 걸 어떻게?

소고기 500그램을 기껏 1만 원으로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는 수입산도 보통 두세 배 가격이 붙어있다. 아무래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원육이다. 수입 원육이 인터넷에서 3킬로그램에 4만원 정도 한다. 낑낑거리며 기름을 정리하고 나면 500~700그램이 날아가지만 그래도 내 수고가 들어간 만큼 아주 저렴하게 고급 식재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고기 기름 떼고 생선 비늘 다듬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다면 그만

아내가 좋아하는 굴비도 그렇다. 시장에 가면 보통 20cm 크기의 참조기 10마리에 3만 원 정도 한다. 굴비는 당연히 더 비싸다. 얼마 전 구입한 참조기는 총 216마리였지만 가격은 8만9000원에 불과했다. 단, 잡히는 대로 궤짝에 담아 도매로 넘기는 시스템이기에 내가 일일이 손질을 해야 한다.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아 한 마리 한 마리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으로 절이고 나자 7~8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도 아직 세척을 하고 건조를 하고 소분해 냉동하는 일이 남았다. 허리도 등짝도 무릎도 결려 땅을 짚고 일어나는데 어구구구 신음이 절로 나온다. 아내도 퇴근 후 그날만큼은 한소리를 하고 만다.

왜 그걸 혼자 해요? 작년에는 함께 했잖아? 하지만 비위 약한 아내가 덤벼들기엔 일이 험해도 너무 험하다. 돈 없고 나이 먹으니 점점 쫌생이 영감이 되는 기분이지만, 어쩌랴 돈은 없어도 먹고는 싶은 것을….

아내에게 카톡으로 완성된 유부주머니 사진을 보냈더니 아내가 그런다. “형만 고생해서 어떡해요. 나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만, ㅎㅎ.” 그럼 됐다. 아내가 맛있어만 해준다면. 부엌살림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가족들이 맛있게 살도록 해주는 것.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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