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인구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살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고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혼재해 있는 곳이다. 1995년 열린 북경세계여성대회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여성들에게 어떤 성과와 영향, 과제를 남겼을까? 이를 논의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35개국 950여 명의 여성 NGO 활동가들이 6월 30일∼7월 3일 태국 방콕에 모였다. '아시아-태평양 NGO 포럼'회의장에서 만난 각국 여성들은 “지난 10년 동안 여성들은 연대를 강화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단결된 힘으로 모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그들의 연대 활동은 가족법 개정, 사회인식의 변화 등 일부 성과로 이어지긴 했지만 2000년대 이후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보수화 되고 있는 각국 정부의 정책에 의해 좌절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회의장에서 만난 한국인 국제 NGO 단체 활동가를 비롯해 포럼에 참가한 일본,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피지의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이슬람 여성 '억압' 없어 가족법 개정 등 진일보”

파리다 샤히드 파키스탄 여성인적자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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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에 살고 있는 여성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이슬람 여성들을 서구인의 시각으로 평가하지 않길 바랍니다.”

파키스탄 여성인적자원센터에서 일하는 파리다 샤히드(53)씨는 아시아-태평양 NGO 포럼의 본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기조연설로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된 북경행동강령은 파키스탄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었다. 북경대회를 계기로 4개 지방정부와 그 산하기관에 여성정책 담당 부서가 설치됐으며 여성부는 여성 NGO 단체들과 함께 당면한 여성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여성차별의 법으로 비난을 받아온 가족법이 개정작업에 들어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여성들에게 권리를 교육시키는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일부다처제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이슬람이란 종교 때문에 여성들이 더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구사회의 대표적 종교인 천주교도 이혼을 금지하는 등 여성 억압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슬람만 비판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샤히드씨는 파키스탄 여성들은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고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농촌지역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동성에 제약을 받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촌지역의 경우 남성들의 문자해독률은 66%인 데 반해, 여성들은 22%에 불과합니다. 낙후된 교육시설과 불편한 교통으로 여성들은 철저히 고립돼 있습니다.”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샤히드씨는 파키스탄 사회에서 고학력 엘리트 여성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기층 여성의 입장을 어떻게 대변하고 있는지 물었다.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센터는 40개의 커뮤니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빈민층 여성들의 커뮤니티도 포함돼 있습니다. 지속적인 연대와 대화를 통해 그들의 바람을 여성정책에 반영하고 정부에 요구할 방침입니다.”

샤히드씨는 “TV 뉴스를 통해 본 한국 사회는 조직화가 잘된 곳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안부 등 일본 전쟁범죄 정부 대신 머리숙여 사죄”

히사코 모토야마 아시아·일본 여성자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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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표정, 경쾌한 목소리로 시선을 사로잡는 히사코 모토야마(35)씨는 1989년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서 증언한 강덕경씨를 알게 된 뒤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며 말 문을 열었다. 그는 포럼기간에 열린 '전쟁에 의해 희생된 여성 생존자들을 위한 배상'워크숍에 참석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한국인들에게 대신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에게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사과 가능성을 묻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가능성이 없다는 답이었다.

히사코씨는 “한국이 식민지 시절 겪었던 고통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하지 않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면서“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반일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 이후 2∼3년간 일본 사회에서도 여성운동단체들이 새로 생기면서 NGO 활동이 활성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히사코씨는 2001년 고이즈미 정권이 탄생한 이후 여성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 자체가 심하게 위축됐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극우 보수화되고 있는 원인을 보수정권과 언론매체의 강한 영향력의 탓으로 돌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일본이 군사력을 갖기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시민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막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국민을 '설득당하는 피동적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헌법 제9조에는 '일본 정부는 군사력을 가질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2004년 7월 현재 일본 자위대는 세계 5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군대로 성장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0년간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자위대를 파병해왔다. 히사코씨는 “1991년 걸프전 이후 대다수 일본인들이 군사력을 가져야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언론매체를 앞세운 정부와 극우단체들의 선전효과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해 히사코씨는 관심이 많다. 그는 “일본은 한국 여성이 이뤄낸 성과를 주목하고 배우려 한다”며 “일본과 한국은 저출산 문제 등 사회 현안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협력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분제·가부장제 갇혀 달리트 여성 77% 문맹”

부루아드 포티마 인도전국달리트여성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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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달리트(Dalit)란 말은 '불가촉천민'을 뜻하는 단어다. 엄격한 신분제인 카스트제도가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인도에서 달리트 계급에 속한 여성들은 글읽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제한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달리트 여성의 77%는 글을 읽지 못한다. 여성 인권운동가인 부루아드 포티마(52)씨도 달리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달리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던 덕분에 어릴 때 글을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이 사회 하층민으로 차별을 받고 살고 있는 것에 불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1살 때였다. 그 뒤 40여 년이 흘렀지만 달리트 가정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포티마씨의 설명이다.

“전체 인도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달리트 계층 여성들은 엄격한 신분제도뿐 아니라 여성을 비하하는 가부장적 의식과 제도에 의해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인도정부는 법, 제도적으로 달리트 계층 여성들도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해 의원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선거구에만 입후보할 수 있다.

“인도는 여성들이 지역 대표로 당선이 되어도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의 사회입니다. '여성은 정치를 할 수 없는 존재'란 인식이 팽배합니다. 어릴 때부터 여성들은 권리를 교육받지 못하고 가정에 복속된 존재로 키워지고 있습니다.”

포티마씨는 '외국 언론에 등장하는 인도의 여성정치인들은 대부분 가문의 후광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여성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과 자신이 속한 계급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10년 전 북경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한 12개 강령들이 인도의 하층 여성들에게 제도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포티마씨는 “아직도 여성의 인권 향상을 외치는 낮은 계급의 여성운동가들은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며 “여성의 교육과 고용기회의 확대, 토지개혁 등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은 亞 역할 모델 여성정책 국제화돼야”

박진영 아시아 여성을 위한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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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에 본부를 둔'아시아 여성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sian Women/ CAW)는 아시아 국가들의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1970년대 말 설립됐다. 여성노동을 이슈로 하는 유일한 국제 NGO 단체로 아시아에서 진행된 노동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 전략과 행동지침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여노협)와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가 회원단체로 가입돼 있다.

박진영(35)씨는 CAW를 이끌고 있는 5명의 프로그램 오피서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이번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태국, 인도인 동료들과 함께'비공식적 경제상황에 있는 여성''여성노동자의 위기''분쟁지역 여성의 삶'등을 주제로 워크숍을 준비했다. 매번 워크숍이 열릴 때마다 50여 명의 아시아 여성들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박씨는 꿈틀거리는 아시아 여성들의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성장 배경,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이란 틀을 벗어나 국가별 연대를 이끌어내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난 3월 태국에 온 박씨는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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