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도 청년 여성이 ‘농사’를 합니다]
“일부에선 여성이 농사짓는 것 의아해하지만
주체적인 삶 살 수 있어 좋아“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 상황을 일컫는 이른바 ‘지방소멸’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그 중심에 여성 청년이 있다. 20~39세 여성 인구 수는 ‘소멸위험지역’을 가르는 잣대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20~39세 여성의 수보다 배 이상 많아서 사라질 수 있는 소멸위험지역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3곳(49.6%)에 달한다(한국고용정보원). 2015년보다 33곳, 2020년보다는 11곳 늘었다.

여성신문의 ‘지방에서도 청년여성이 OO를 합니다’ 기획에서는 지방에서 청년 여성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주목해봤다. 이번에는 지역에서도 청년 여성을 더욱 보기 힘든 농촌으로 찾아가, 농촌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청년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여성들에게는 청년으로서,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겪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농촌에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들은 입을 모아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귀농 선택해
“재능을 점점 키워나가게 되는 곳이 농촌”

경북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여성신문
경북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여성신문

점촌터미널에서 약 30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 낮은 단독 주택과 들판만이 주변에 자리잡은 이 곳에는 폐교를 관사로 꾸며 11명의 청년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경북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 살고 있는 백아름(32) 대표와 마민지 씨(32)는 각각 6년, 5년째 쌀·고추·깨 농사를 짓고 있다. 대학 동기인 두 사람은 공무원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다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 끝에 귀농을 하게 됐다. 백 대표는 “잠깐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행복하지 않았다”며 “농사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저한테는 마음적으로 편한 일이기도 하다”며 활짝 웃었다.

청년들은 농촌에서 지내며 가장 좋은 점에 대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점을 꼽았다. 백 대표는 “직장생활할 때는 시스템에 내가 끼워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지금은 땀흘려서 무언가를 얻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에서는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며 “하는 일이 다양하고 많아서, 해나가다보면 점점 더 재능을 키워나가게 된다”고 밝혔다. 마민지 씨는 “여기에서는 나의 선택 하나하나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제가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애플민트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수진씨. ⓒ본인 제공
애플민트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수진씨. ⓒ본인 제공

충남 서천에서 연구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다 농촌으로 떠난 지 5년째를 맞은 이수진(35) 씨. 블루베리와 허브 농장을 하고 있는 그는 “처음에는 재배한 작물로 먹고 사는 생활을 꿈꿨지만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규모를 키워 수입을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농장에서 얻는 수익과 허브농장 체험활동 운영 수익으로 연 3,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얻는다고 밝혔다.

많지는 않은 수익이지만 도시에서의 삶보다는 훨씬 만족스럽다는 이수진 씨. “도시에서는 일에 매여서 살았다”는 그는 “시골에서는 시간을 여유롭고 주체적으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시간이 없어 누리지 못했던 문화적 혜택도 더 많이 누리고 있다. 그는 “대규모의 공연은 아니지만 작은 행사가 빈번하게 있다. 지자체 지원으로 무료나 적은 가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 대상 귀농 플랫폼 필요해

그러나 농촌에는 농사짓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다. 백 대표는 “농기계를 사러 가거나, 공무원들을 만나거나 하면 여자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에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귀농한 청년에 대한 편견도 존재했다. 백 대표는 “어르신들이 귀농한 청년들에 대해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 무언가 실패하고 떠나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교통, 주거, 의료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백 대표는 “시골은 건물이 오래되고 열악하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고 말했다. 이수진 씨는 “병원 시설이 적어 체계적이고 고도의 의료서비스를 받기는 어렵다”며 “교통여건도 좋지 않아, 배차 간격이 넓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텃세에 대해서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수진 씨는 “24세 차이나는 분이 이 마을의 막내인지라 텃세를 부리기보다는 오히려 도와주려고 하셨다”고 밝혔다.

경북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조합원들과 장동범씨가 지난 10월 농림축산식품부의 시골언니프로젝트 일과 중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경북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조합원들과 장동범씨가 지난 10월 농림축산식품부의 시골언니프로젝트 일과 중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은 초창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정책인 영농정착 지원금을 지급하는 청년후계농제도를 소개했다. 청년후계농제도는 청년창업형 후계농업경영인을 선정해, 영농정착지원금을 1년차에게는 월 100만원, 2년차에게는 월 90만원, 3년차에게는 월 80만원 지급한다. 그러나 여전히 지원 정책이 더욱 필요하다고 청년들은 입을 모았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전 대표이자 백 대표와 마민지 씨를 귀농의 길로 이끈 장동범(61) 씨는 여성들이 언제든지 농촌을 탐색하고 경험하며, 이후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귀농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귀농하려는 마음을 가진 여성들이 안전한 장소에서 장·단기 머물면서 교육도 받고 실제로 농사도 짓고, 지역도 탐방하면서 실제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해보고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간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운영 내실화, 아이돌봄 인프라 확충, 여성친화적 주거 및 쉼터 조성, 맞춤형 교육 역량 제고, 경력단절 청년여성 취창업 지원 등 필요한 지원 정책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귀농을 꿈꾸는 청년 여성들에게 희망이 담긴 말과 현실적인 조언을 함께 전했다. 이수진 씨는 “이주를 생각한다면 젊었을 때 오는 게 좋다”며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환상만 갖고 오기에는 쉽지 않다. 리틀 포레스트의 삶을 생각하고 와서는 안 된다”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부정적인 시각은 벽을 만든다. 시골에 와서 정착하려고 한다면 지역에 계신 분들이랑 어울려야 오래 살 수 있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던졌다. 마민지 씨는 “시골에 대해서 겁을 내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센터나 청년단체를 방문하면서 농촌이 어떤 곳인지 시골을 경험해보고 내려오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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