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2, 30대가 볼 때는 60이나 70이나 다 그게 그거일 거다. 어차피 노인과(科) 소속일 테니까…정작 내가 60이 다 되고 보니까 60은 그래도 할머니 쪽보다는 아주머니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 70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10년 후의 한국을 비관적으로 그린 공병호씨의 신간 소개를 읽다가 문득 10년 후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일단 예순아홉이라는 숫자를 머릿속에 쓴 순간 나도 모르게 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옆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남편이 깜짝 놀라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옛날 같으면 내가 아무리 소리를 꽥꽥 질러대도 코끼리 발바닥처럼 둔하기만 하던 남편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섬세 모드로 전환되는 중인가 보다. 그깟 외마디 비명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걸 보니 오히려 내가 적응이 안 된다. 아마도 이 남자의 깊은 곳에 납작 엎드려 있던 여성성 또는 모성성이 이제야 슬며시 깨어나는 모양이지?

“10년 후면 내 나이 70이잖아. 그러면 완전 노인이잖아. 어떡해∼.”

내가 들어도 이건 오버다. 지가 무슨 여섯 살짜리라고 이 따위 응석을. 아이들이 있었으면 틀림없이 어머니,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하며 태클을 걸어 왔겠지만 요즘 우리 집은 완전 자유지대다. 막 나가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

“아니, 언제는 나이 드는 거 신경쓰지 말고 여유 있게 살라고 책까지 내더니 왜 이러실까. 70이 되면 어때서? 60이 지나면 70이 되고, 또 80이 되고 다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가끔 가다가는 남편 입에서 내가 하던 말들이 고스란히 되풀이되어 나올 때가 있다. 한 집에서 30년 이상을 티격태격하다 보면 별 수 없이 섞어찌개가 되나 보다.

2, 30대가 볼 때는 60이나 70이나 다 그게 그거일 게다. 어차피 노인과(科) 소속일 테니까. 나도 젊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60이 다되고 보니까 60은 그래도 할머니 쪽보다는 아주머니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 70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주위에서도 70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야 언제나 청춘이겠지만 몸에는 영락없이 70이라는 숫자가 또렷이 드러난다.

그런데 10년만 지나면 나도 명실상부한 노인이 되는 거다. 사실 지금도 온갖 성인병(요즘은 생활습관병이라고 한다지?)의 요람으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 불러 마땅한 몸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는 이미 노인계에 진입한 셈이지만 교묘한 분장술로 아직까지는 젊어 보인다는 인사를 끌어내고는 혼자 좋아라 하며 산다.

예순아홉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미래가 흐릿하듯이 나의 10년 후도 그림이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일부의 예상과 같은 암울한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다는 희망, 그것 하나만은 또렷하다.

우리 어머니 세대의 예순아홉 살은 어땠을까 새삼 돌이켜 본다. 이것 역시 나 중심적인 생각일 테지만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단순하고 느긋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분들은 오로지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고, 자식들과 손주들 맛있는 거 해주며 즐거워하고, 자식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사셨다. 그런 만큼 자식의 일이 잘 안 풀리면 스스로의 인생도 실패라고 생각해서 우울한 노년을 보내셨다.

물론 나도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을 먹을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머니세대처럼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 나는 욕심 많은 신노년세대의 일원이다. 욕심은 세 가지나 된다.

우선, 너무 큰 욕심이겠지만 10년 후에도 건강이 지금보다 많이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좀 조신하게 살아야 할 텐데 그게 뜻대로 될지 나도 나를 못 믿겠다. 잘 나가다가도 그 놈의 논다니 기질이 한 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만사가 도로아미타불이다.

돈에 대해서는, 제발 물가가 안 올라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나라의 앞날이 바로 내 앞날이라는 점을 도대체 부인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이 돈 문제다. 에구구.

마지막으로, 사람이 좀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 해도 유치한 구석이 너무 많다. 사람이 70쯤 되면 그래도 좀 성숙한 맛이 있어야 하잖아. 어? 어느 새 앞으로 10년간의 과제가 주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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