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에 따라 산소포화도 수치가 다르다고?
피부색에 따라 산소포화도 수치가 다르다고?
  •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 승인 2022.12.02 10:17
  • 수정 2022-12-02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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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과학]
유색인종에 치명적인 과학기술 편향
미 FDA, 산소포화도 측정기 허가 조건에
‘임상시험 참여자 15%는 어두운 피부색’
그래도 흑인·아시아계 등 ‘건강 불평등’ 여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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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1일 의료기기 자문위원회의를 통해 맥박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피부색이 어두운 개인의 경우 덜 정확할 수 있다는 문제점에 대해 논의했다. 피부색과 산소포화도 수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산소포화도 측정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의료기기가 됐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에 걸려도 감기처럼 그냥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중증의 경우 바이러스가 폐에 감염되면 호흡이 힘들어지고 우리 몸에 산소가 적정하게 공급되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산소포화도 수치가 95% 아래로 내려가면 저산소증이 의심돼 중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산소포화도는 혈중 내 전체 헤모글로빈 중 산소와 결합한 헤모글로빈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산소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신체 조직과 세포로 운반된다. 혈관 속 헤모글로빈은 결합한 산소의 양에 따라 붉은색의 정도가 달라지는데, 이에 따라 흡수·반사되는 외부 빛의 파장도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산소와 결합한 헤모글로빈은 적색광(660nm)보다 적외선(910nm)을 더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반면, 산소와 결합하지 않은 헤모글로빈은 그 반대로 작용한다. 손가락 끝을 산소포화도 측정기에 끼우면 적외선과 적색광과 손가락에 투사해 감지된 빛이 진동 신호를 생성해 혈액 내 산소 농도를 추정한다. 측정 시 손가락을 청결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광택을 낸 손톱, 인조 가공된 손톱, 매니큐어는 적외선의 전달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 미시간 의과대학 연구진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에 “맥박 산소 측정법의 인종 편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손가락에 끼우는 맥박 산소측정기의 결과와 실제 동맥혈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를 비교하니 인종에 따라 차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피부에 있는 멜라닌 세포에 의해 형성되는 멜라노솜이라는 구조는 산소 측정 과정에서 마치 산소와 결합한 헤모글로빈이 진동 신호를 생성하는 것처럼 작용한다. 피부가 어두운 사람들일수록 멜라노솜이 많고, 실제 혈액 내 산소포화도보다 더 높은 측정값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매니큐어만으로도 측정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피부색의 영향은 간과한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코로나19를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냈지만, 반대로 건강 불평등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후 대규모 후향적 연구를 통해서 코로나 19에 감염된 흑인의 약 35%가 제때 산소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아예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은 산소포화도 측정의 편향으로 인해 백인보다 잠재성 저산소혈증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미국 내 코로나19로 인한 중증환자와 사망자의 비율을 보면 유색인종 비율이 백인보다 현저하게 높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은 의료의 접근성, 의료에 대한 신뢰도와 같은 사회적 문제와만 관련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대두되자, FDA는 2013년부터 산소포화도 측정기 허가를 위해 ‘임상 시험 참여자 중 2명 또는 15%(둘 중 더 많은 인원)는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기준을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한국 사람의 피부색조차 천차만별인 것처럼 ‘어두운 피부색’의 스펙트럼은 넓으며 그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이러한 기준이 있었음에도 15%는 어두운 피부색이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지 못했다. 

과학기술 혹은 의학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다양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구상의 78억 명 중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 피부색, 키, 몸무게를 비롯한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과 생활환경과 소득 수준에 따라 모두가 다르다. 지금의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 정해진 ‘기준’은 언젠가 나를 제외한 ‘기준’으로 돌변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다양성에 대한 기준은 손톱에 칠한 형형색색의 매니큐어를 뛰어넘어야 하지 않을까?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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