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가리켜 '가족'이라 칭하는 일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인간 중심적입니다. [애니멀리티]는 인간의 시선이 아닌, 동물의 시선으로 동물들(animality)을 바라봅니다. <편집자주>

인간이 동물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악행이야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을 가장 분노케 하는 건 법으로도 명백히 금지되어있는 학대 범죄일 것이다. 동물은 인간에게 학대를 당해도 또 다른 인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고, 운 좋게 발견됐다 해도 스스로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거나 입증할 수도 없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더 크게 공분을 일으키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더욱 엄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2022년 4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동물학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년 4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동물학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물 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지난 10월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2010년 69건에서 2020년 992건으로 10년간 14.4배가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로 처벌이 이루어지는 건수는 극히 드물며 그마저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물보호법이 개정을 거듭하며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 수위는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되었으나 정작 법정에서는 솜방망이 처분만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적정한 양형 기준 설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지난해 6월 동물 학대 범죄 양형 기준 신설을 논의했지만, 양형위원회가 동물 학대 범죄를 양형기준 설정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사회가 정체하는 사이 동물 학대 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전라북도 군산의 어느 아파트에서 피 흘리는 강아지의 사체가 발견됐다. 앞서 신고를 접수한 파출소에서 나와 현장에 다녀갔지만, 동물자유연대가 서울에서 출발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사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다. 사체의 모습은 처참했다. 한눈에 봐도 몇 개월이나 되었을까 싶게 어려 보이는 강아지의 얼굴과 몸 여기저기는 모두 피범벅이었다. 학대 사건의 주요 증거가 될 사체는 경찰 대신 활동가들이 수습해 동물 병원에서 수의사 소견을 받았다. 사인은 두개골 복합골절과 뇌 손상, 골절 정도의 심각성으로 미루어 봤을 때 상당한 외력이 가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의도적인 학대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동물자유연대는 사건을 경찰에 고발했고, 범행 당일 용의자를 특정한 경찰은 범인에게 범행을 시인 받았다고 밝혔다. 그 결과 세상에 알려진 학대자는 놀랍게도 아직 10대에 불과한 남자 청소년이었다. CCTV 영상에는 피를 뚝뚝 흘리는 강아지의 사체를 한 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학대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그는 ‘길에 돌아다니는 유기견이 예뻐서 데려왔는데 자신의 말을 안 듣고 손을 물어 화가 났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추정 나이 고작 6개월인 강아지를 잔혹하게 때려죽인 이유로 내뱉기에는 옹색하기 그지없는 핑계였다.

고작 반년 남짓 세상에 머무르다 떠난 강아지에게 우리는 ‘산들’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냈다. 산들이를 죽인 학대자에게는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유기견이었던 산들이는 길을 헤매다 학대자에게 붙잡혔고 두개골이 부서질 만큼 잔인하게 맞아 죽은 뒤 다시 버려졌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폭행이니 가벼이 넘기자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생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최소한 산들이가 더 억울하지는 않을 만큼 엄중한 처벌이 뒤따르면 좋겠다.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판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래서 앞으로 그 누구도 산들이처럼 죽는 일이 없도록 조속한 양형 기준 마련을 촉구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