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
정년퇴임 교수·시인·주부·기자 모여
현장 찾아 ‘어슬렁’ 시위 환경운동
기후위기 대응, 청년활동가 지원 위해
재산 10% 내놓는 ‘사회적 상속’ 운동
“우리가 누린 물질적 풍요, 환원해야”

 

윤정숙 녹색연합 상임대표 ⓒ홍수형 기자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  ⓒ홍수형 기자

주부와 시인, 화가, 전현직 교수와 언론인, 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이는 1964년생부터 1947년생까지 ‘60+’(60대 이상), 직업도 사는 곳도 제각각인 ‘실버 세대’가 모인 이유는 단 하나, 기후위기에 대응할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60+기후행동’은 지난 1월 19일 공식 출범한 신생 단체다. 출범은 늦었지만 회원들의 나이와 경력만큼은 시민단체 고문 급이다. 윤정숙 녹색연합 상임대표를 비롯해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이경희 환경정의 이사장 등 한국 시민사회 운동을 이끈 이들도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9월 출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 700여명이 서명에 참여해 뜻을 함께 했다.

“지금의 60+ 세대는 산업화와 경제적 성장의 풍요시대를 누렸지만 산업화와 성장의 그늘은 보지 못했어요. 기후 위기에 이르기까지 배출한 온실가스의 수혜를 받고 살아왔지만, 이런 지구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지요. 기후위기에 일조한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가장 많았어요. 기후행동에 앞장서는 청년 세대의 든든한 ‘뒷배’가 되고 싶어요.”

유럽·미국 등에서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노인을 일컫는 ‘그레이 그린(Grey green)’의 출발이다. 이들은 모든 기성세대가 성장의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니지만, 산업사회를 주도했고 기후위기를 미래세대에 물려주게 된 만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잘못을 반성하고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동적 이미지로 그려졌던 노년세대가 청년·청소년들이 앞장서고 있는 기후위기 대응에 함께 나설 것을 제안했다. “노년은 수동적이지 않다. 무기력하지도, 퇴행적이지도 않다. 모든 세대와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

“어린아이와 눈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청년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못하겠습니다. … 어쩌다 미래가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어쩌다가 물려받은 것조차 그대로 물려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 원인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의 오만과 탐욕 탓입니다. 전 세계 청소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향해 빼앗긴 미래를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 이제 우리 노년들이 나서고자 합니다. 전환의 대열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 그간 우리가 저질러온 과오를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자 합니다.” -‘60+기후행동’ 선언문 중 

‘60+기후행동’ 창립발대식이 지난해 1월 19일 서울 탑공공원 삼일문 앞에서 열렸다. ⓒ60+기후행동
‘60+기후행동’ 창립발대식이 지난해 1월 19일 서울 탑공공원 삼일문 앞에서 열렸다. ⓒ60+기후행동

산업화 세대가 기후위기 일조했는데
미래세대에 책임을 떠넘길 수 없어

60+기후행동 활동을 소개하는 윤정숙 공동대표의 두 눈은 반짝였다. 그 역시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손주를 둔 할머니다. 그는 “2019년 세계기후행동의 날 집회에 나갔다가 ‘당신들은 나이 들어 죽지만 나는 기후위기로 죽는다’는 한 청소년의 팻말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청년들의 절박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녹색연합 상임대표를 지내며 30년간 여성·환경운동에 몸담은 그에게도 60+기후행동의 활동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운동”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활동은 ‘색다르다’. 상근 활동가로 일하며 집회 기획부터 행동까지 함께 하는 기존 운동과 달리 느슨하게 연대하고 따로 또 같이 활동한다. 흡사 각개전투 같다. 전체 회원 130여명, 운영위원 20명은 격주 일요일 저녁 8시 온라인 ‘줌’에서 만나 회의한다. 상근자도 사무실도 없다. 지난 1년간 빠진 적 없이 50여번의 회의가 열렸다. 소통은 ‘텔레그램’으로 나눈다. 시위는 확성기가 아닌 직접 쓴 손팻말로 대신하고, 다 같이 모여서 행진하기 보다는 시위 장소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녹색 모자와 머플러는 이들의 상징이다.

“‘지구를 구할 119가 되자’며 1월 19일에 출범했고, 납세자의 날(3월 4일)에 ‘세금을 기후위기 대응에 우선 사용하라’고 국회 앞에서 기습 시위를 했어요.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에는 어린이대공원에 모여 ‘할머니가 앞장 설게’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멈춤시위’를 벌였고요. 주변 장소를 산보하듯 걷는 ‘어슬렁 행진’, 기후와 관련된 현장을 찾아가 보는 ‘가보자 버스’ 등도 회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탄생한 운동 방식이에요.”

줌 회의 때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소통하며 빠르게 다음 일정과 운동 방식을 정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해보면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했다. “관행과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건강한 긴장을 느끼면서 회원들과 어떤 방법이 운동의 취지를 잘 전달할지, 어떻게 해야 심장에 닿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회원들은 이런 세상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 없으니 뭐든지 해야 한다고 하세요. 재능이든, 돈이든, 시간이든 내야한다고요.”  

윤정숙 녹색연합 상임대표 ⓒ홍수형 기자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 ⓒ홍수형 기자

기후변화대응 최하위권 ‘한국’
“공포영화 예고편 보는 것 같다”

기후변화 관련 가장 큰 국제회의인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6~20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 기후변화로 개발도상국이 입은 피해와 손실에 대해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기금을 마련해 보상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기후변화 대응 국제 논의 30년 사상 처음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 즉 ‘손실과 피해’는 개도국일수록, 약자일수록 더 크다. 지난해 가뭄으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만 5800만명이 영양 부족을 겪었고, 올해 파키스탄은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1이 물에 잠기고 33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1700여명이 사망했다. 지난 6월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취약한 55개국이 지난 20년간 겪은 기후변화 피해는 5250억 달러(약 705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한국은 이번 COP27에서는 개도국에 대한 지원 의무가 부여된 선진국 그룹에서 빠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2022년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63개국 중 60위, 한국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국가는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뿐이다. 2000~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탄소배출량 증가 속도는 최고다. 2016년에는 영국의 기후변화 NGO ‘기후행동추적’으로부터 ‘4대 기후 악당’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윤 대표는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두고 “공포영화 예고편을 보는 듯 하다”고 말했다. 대형사고는 반드시 사전에 크고 작은 전조 증상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는 뜻이다.

“원전에서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요. 거미줄의 이슬을 보고 날씨를 아는 것처럼 원전 사고는 대형 사고의 예고편 같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본방송을 맞이하는 순간, 탄소배출에는 조금도 보태지 않은 미래세대가 그 책임을 떠안게 되는 거죠. 아무런 준비 없이 그런 상황을 맞을까봐 걱정이 큽니다.”

‘시민 몇몇이 목소리를 낸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나.’ 60+기후행동 회원들은 이러한 비아냥은 일상이다. 윤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끊임없이 기후위기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기후침묵하고 있는 정부, 정책, 기업들에게 ‘그것은 아니다’라고 다른 목소리 낼 겁니다. 기후 위기 관련 현장이면 어디든지 가서 어슬렁 거리고, 주민들을 만나 연대할 거에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 다른 목소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하느냐죠.”

60+기후행동은 지속가능한 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상을 떠날 때 유산의 10% 정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아 기후 활동가들을 지원하자는 ‘사회적 상속’도 추진할 계획이다.

“누가 간 길도 아니고, 어느 나라에서 해본 것도 아니에요. 지도가 없는 곳으로 가고 있어요. 우리의 행동은 우리 스스로 내비게이션이 돼서 지도에 없는 그곳을 찾아가는 것,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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