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박원순 전 시장 배우자
인권위 상대 '권고 결정 취소' 소송 패소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 “당연한 결과”

지난 15일 서울행정법원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행위를 인정했다.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사건은 정계를 뒤집어 놓는 한편 시민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박 전 시장의 실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년 이상 이어져온 사건의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가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가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박 전 시장의 실종과 사망
인권위의 성희롱 판단 있었지만
박 전 시장 유족 측 소송 제기해

박 전 시장의 성희롱 사건은 2020년 7월 9일 그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휴대전화를 끈 채 사라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10일 그는 북악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그가 서울시청에서 일했던 여성직원 A씨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부, 서울시 등에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표현하면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같은 달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 측 변호인단과 지원단체들은 인권위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 관계자들의 방조·묵인 등 의혹 전반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인권위는 직권조사를 의결하고 8월 초 9명의 특별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5개월이 걸친 조사 끝에 2021년 1월 인권위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의혹에 대해 성희롱이 맞다고 판단했다. 조사단은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21년 4월, 박 전 시장 유족 측은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인정한 인권위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족을 대리해 인권위 성희롱 결정 취소 소송을 진행한 정철승 변호사는 변론기일에서 “형사사법기관이 아닌 인권위가 국민에 대해 불완전한 절차를 가지고 성범죄자라고 결정 내리고 발표를 했다”며 “중대한 월권적 행위이고 권리침해 행위”라고 말했다. “유리한 진술을 할 기회조차 없는 망인을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낙인찍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사건 타임라인 ⓒ여성신문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사건 타임라인 ⓒ이은정 디자이너

법원, 원고 패소 판결… 박 전 시장 성희롱 인정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 “당연한 결과”

2022년 10월, 정철승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박 전 시장과 피해자가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텔레그램 메시지는 2020년 7월 8일 고소 시 피해자가 직접 본인의 핸드폰을 포렌식하여 제출한 것이었다. 이 포렌식 결과는 성희롱 결정을 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과정에서도 이미 검토된 바 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는 정 변호사의 텔레그램 메시지 유포는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제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11월 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는 박 전 시장의 배우자인 강난희 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권고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결국 이 사건 각 행위는 성적 언동에 해당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러 성희롱에 이른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 사건 권고 결정은 피고(인권위) 권한 범위 행위로, 그 권고 내용에 비춰 재량권 일탈·남용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다른 쟁점은 ‘피해자다움’에 관한 것이었다. 강 씨 측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존경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쓰거나, 박 전 시장과의 텔레그램 메시지 등에서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 ‘꿈에서는 돼요’ 등의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성희롱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오히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강씨 측 주장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피해를 보면 즉시 어두워지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시장 비서직이라는 업무에 차질을 빚지 않고 경력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수치심으로 인해 피해를 부정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측에서는 “행위 당사자로 지목된 이가 해당 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거나 입증하기보다, 피해자의 평소 모습을 거론하며 그랬다면 피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것은 성폭력이 피해자 행실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성적 경계와 인격을 침범하는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를 훼손하겠다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를 변호하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는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인권위 결정이 소송으로 가 판단을 받게 되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며 “이번 판결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려고 하는 지지자들에게 마침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