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도 청년여성이 ‘페미니즘’을 합니다]
4. 지방 청년 여성 대학생 3인 인터뷰
지방 페미니즘을 받치는 대학 내 동아리들
백래시 거세… QR코드에 압정 박아두고 포스터 훼손
“페미니스트·페미니즘 공동체 숫자 많아져야”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 상황을 일컫는 이른바 ‘지방소멸’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그 중심에 여성 청년이 있다. 20~39세 여성 인구 수는 ‘소멸위험지역’을 가르는 잣대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20~39세 여성의 수보다 배 이상 많아서 사라질 수 있는 소멸위험지역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3곳(49.6%)에 달한다(한국고용정보원). 2015년보다 33곳, 2020년보다는 11곳 늘었다. 

성평등은 지방소멸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꼽힌다. 그러나 지방의 페미니즘 기반은 넓지 않고, 대학 내 동아리가 지방의 페미니즘을 받치고 있다. 대학 내 동아리들은 학술 연구 모임부터 시작해 인하대 사건 기자회견 참여 등 학외 사안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충북대학교 간호학과 페미니즘 동아리 ‘보구여관’은 그 중 하나다. 보구여관의 창립 멤버이자 대표인 은조(22) 씨는 학내에 페미니즘 동아리가 마땅히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직접 만들게 됐다. 보구여관이라는 이름은 동명의 최초 근대식 여성 대상 진료 기관이자 근대식 간호교육기관에서 따왔다.

두마(26) 씨도 경상국립대학교 ‘세상의 절반’의 창립 멤버다. 기존에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었지만 보다 실천 중심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 경남지역대학 페미니즘동아리 연합 ‘아우르니’ 대표도 겸하고 있는 그는 “2020년 상반기에는 N번방이, 하반기에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며 “경남 지역에서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낼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아우르니에는 경상국립대 ‘세상의 절반’, 진주교대 ‘방과후 페미니즘’, 창원대 ‘페밋’, 경남대 ‘행동하는 페미니즘’이 속해있다.

ⓒ보구여관
충북대학교 간호학과 페미니즘 동아리 보구여관이 붙인 인하대 사건 관련 대자보. ⓒ보구여관

보구여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리 씨와 은조 씨는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페미니즘 이슈를 기점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리 씨는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때, 당시 남자친구와의 논쟁이 있었다”며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은조 씨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20년 N번방 이슈가 있었을 때다”며 “이전까지는 페미니즘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해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페미니즘에 동참해서 같이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두마 씨는 여성 대상 범죄 피해자가 될 뻔했던 경험이 페미니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피해자가 될 뻔한 경험 이후 일상 속에서 공포를 겪었다는 그는 ‘내가 여자라서’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보구여관’은 학과 내 동아리인 만큼 학과의 특성에 맞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인권과 더불어 간호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편, 건강권과 월경인식개선 위한 캠페인을 학교 축제에서 벌였다. 최근 발생했던 인하대 살인사건 때에는 이를 추모하기 위해 여성단체와 함께 대자보를 붙였다. 충청지역 대학 페미니즘 동아리들과 콜로키엄을 열기도 했다. ‘아우르니’는 인하대 사건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등 사안에 대응하는 한편, 페미니즘을 알리고 백래시에 맞서기 위한 대중 강연회 등 기획 사업을 하고 있다.

ⓒ아우르니
인하대 강간살인사건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단체 사진. ⓒ아우르니

이렇듯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들은 “학내에서 페미니즘 모임이 있다는 걸 잘 모르고, 가입률이 떨어지는 형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은조 씨는 “연대할 수 있는 모임이나 단체가 많지 않다”며 “다른 단체들과 SNS로 연락을 하다 보니 제약이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충북대학교가 위치한 청주에서는 지방선거 당시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했을 만큼, 페미니즘의 풍토가 마련돼 있기도 하다. 진주에 위치한 경상국립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마 씨도 “과거에는 페미니즘 담론이 수도권 중심이었고, 지방은 따라갔지만 지금은 지방에도 페미니즘 공동체가 생겨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백래시는 견고하다. 충북지역의 ‘보구여관’과 경상지역의 ‘세상의 절반’ 모두 ‘에브리타임’이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오는 조롱·루머 게시글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보구여관’은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아리 씨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원이 노출되고,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고정되는 것이 걱정된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어떤 지역이든 간에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 공동체의 수가 많아져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은조 씨는 “더 많은 소모임이 생겨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두마 씨는 “단체에 들어가지 않고 개인 페미니스트들이 다수다. 하지만 이는 한계가 크다”며 “페미니즘 공동체에 들어가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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