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버스체계 전면 개편에 부쳐─

22평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인 82세 친정 아버지와 77세 친정어머니는 아직도 국민으로, 또 서울 시민으로 내야 할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계신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라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혜택을 받는 것은, 3개월에 한 번씩 나오는 1인당 3만6000원(한 달에 1만2000원)의 교통비 보조금과 전철(지하철) 무임승차, 고궁 무료입장 그리고 근처 영화관에서 경로우대를 적용받아 4000원에 영화를 보시는 것 정도다. 물론 법으로 정해져 있는 노인복지 시책은 몇 가지 더 있지만, 부모님께 해당되고 두 분이 실질적으로 누리는 것을 꼽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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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인 도움과는 별개로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의 노인 생활이 편리할 것 같아 보이지만 참으로 어렵다. 온갖 편의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는 해도 어르신들의 생활과는 직접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이용한다 해도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다. 지하철만 해도 갈아타는 곳이 워낙 많고 복잡해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헤매기 일쑤다. 길눈이 밝은 데다가 안내판을 충분히 읽을 수 있고 다리가 튼튼한 나도 가끔 헤매는데, 그럴 때마다 눈이 침침하고 길눈 어두운 어르신들 고생하시겠구나 싶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분들이라면 또 얼마나 많은 길을 일일이 물어보며 가셔야 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어르신들 가운데는 요금도 무료고 해서 지하철을 이용해 원하는 곳 어디라도 다니는 분들도 많지만, 길도 잘 모르고 헤매게 되니까 자꾸 묻기도 민망해 지하철 타는 일을 아예 포기했다는 분들도 의외로 많으시다. 서울 생활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면 몹시 불편하니까,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하시라고 권해도 고생을 많이 하신 까닭인지 대부분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으신다.

그런데 복잡한 지하철과 달리, 집 앞을 지나는 버스 번호와 노선을 잘 알고 다니던 어르신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겨났다. 7월 1일부터 서울 버스의 노선과 번호, 요금 등 기존 틀이 완전히 바뀌면서 새롭게 공부를 하셔야만 하게 된 것이다. 파란색 간선버스, 초록색 지선버스, 빨간색 광역버스, 노란색 순환버스의 구분부터가 쉽지 않은데, 버스 색깔을 나타내는 영어 알파벳 'B(Blue), G(Green), R(Red), Y(Yellow)'―우리말로 하면 '파, 초, 빨, 노'를 써놓은 것―은 또 어찌나 생뚱맞은지 주위 어르신들께 여쭤보니 영어 글씨가 무슨 뜻인지는 물론 왜 써 있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버스 번호를 눈여겨보면 이 버스가 어느 권역에서 어느 권역으로 다니는지 알 수 있어, 동대문구의 어디서 영등포구의 어디로 갈 때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가는 동네가 어느 구(區)에 속해 있는지까지 다 헤아리면서 다니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계시겠는가. 거기다가 편리하게 이용하려면 인터넷에 들어가 자신이 타고 다니는 버스와 서는 곳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하니, 자녀들이 부모님 다니실 곳을 하나하나 확인해 알려드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버스 정류장의 표지판에도 버스 종류와 번호, 노선이 표시돼 있지만 글씨도 작을뿐더러 글자를 읽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간단한 숫자 모양을 암기해 버스를 이용하던 어르신들이 한참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다 답답해진다.

약자가 편안한 세상은 약자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편안한 세상이며, 나중에 그들이 약자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나라'가 노인들에게는 '또 다른 나라'일 수밖에 없다. 젊은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라'에서 노인분들은 오늘도 한숨을 쉬고 계실지 모른다.

“노인만 자꾸 살기 힘들어지는구나….”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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