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랑 산다]
문학·미술·음악...AI 창작 시도 확대
거대기업 시장 지배력 더 커질 것
파편화된 창작자들 보호·연대 시급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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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신춘문예부터 AI 언어모델로 쓴 작품이 나올 수도 있어요.”

지난 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열린 ‘문학주간 2022’ 행사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날은 인공지능(AI)이 문학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단 며칠 간의 일기만 있어도 이튿날 쓰일 일기를 자동으로 생성해내고,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상상도 못 했던 동화 스토리를 뽑아내는 AI에 청중과 참가자들은 일제히 놀라워했다. 사람과 AI 중 누가 썼는지 분간이 안 되는 결과물도 나왔고, AI가 던져준 힌트에 영감을 받아 사람이 스토리를 이어갈 가능성도 검토됐다. AI가 쓴 소설이 상을 받는 것이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세상이 코앞까지 온 것이다. 문장 하나로 그림도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세상인 만큼, 미디어는 “창작의 영역조차 AI에 잠식됐다”는 말을 일제히 쏟아내고 있다.

이토록 놀라운 기술이지만 아직 현업에서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술의 수준이 인간 전문가 수준으로 올라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또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게 프롬프트(Prompt) 형태, 즉 명령어를 넣듯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나 쓰고자 하는 글을 입력하는 툴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해당 기술을 개발한 오픈AI 등은 일반인도 보다 손쉽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네이버 하이퍼클로버를 활용해 한국어로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업 종사자들이 AI 사용을 조심스러워하는 여러 이유 중에는 인식과 권리의 문제도 얽혀있다. 지금이야 AI를 썼다고 하면 화제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AI 활용 여부를 더 부각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육체적 한계로 작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해, 이현세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은 자신의 만화 작법 스타일을 AI에 학습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기술을 활용해 쉽고 빠르게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는 것을 정서적으로 꺼리기도 한다.

권리 문제가 여전히 불명확한 것도 걸림돌이다. 현재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AI의 발명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AI가 발명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AI 생성물을 둘러싼 맞춤형 특허의 형식을 설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 국제적 특허 표준은 AI로 생성된 발명이 없던 1994년 체계를 따르고 있고, 따라서 시대에 맞는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AI가 제약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고 있고, 이에 대한 투자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AI 발명에 길을 열어주어 산업 혁신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AI 생성모델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 생태계는 기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권력을 쥐는 건 누구일까.

현재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주요 기업 및 산업계에 힘이 몰려있다. 가령 언어모델 GPT-3를 개발한 오픈AI가 곧 GPT-4를 낼지도 모른다는 소문만으로도 모두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버전 업데이트 때마다 그 혁신의 폭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모티콘 정도를 그리던 AI가 몇 개월 후 초상화를 5초 만에 그릴 수 있는 수준이 되곤 하니, 다음 버전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초거대 모델이 API로 공급되면서, 해당 API를 활용해 서비스로 만들어 내는 스타트업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마치 앱스토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앱을 만드는 사람들이 잔뜩 늘었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모델의 업데이트 주기가 짧아질수록, 그리고 그 업데이트로 인한 변화가 충격적일수록, 기술을 보유한 거대 기업의 권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기술의 사용자 단위에서 보면, 아직 AI를 창작에서 활용하는 이들이 개인 단위로 뿔뿔이 흩어진 모양새다. 다만 곳곳에서 AI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을 개념적으로 언급한다. 예술가들이 만든 글, 그림, 음악이 온라인 공간에서 데이터로 수집돼 알고리즘의 먹이로 쓰이고,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학습을 마친 AI 모델은 인간 크리에이터들을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창작물의 저작권이 주로 논의되지만, 사실은 학습되는 데이터나 표본이 되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적절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데이터 원본에 보이지 않는 워터마크를 삽입해, 데이터셋(Dataset, 데이터를 관련성 있게 모은 것) 편입 시 허가받도록 만드는 등 여러 조치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창작자들의 연대, 그리고 이들의 힘이 더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얼마 전 열린 미국 스탠퍼드대 HAI 가을 컨퍼런스에서는 “방사선전문의(radiologist)가 AI가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방사선전문의’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라는 언급이 있었다. 기술 자체가 사람이 하는 업무 단위를 대체할 수는 있지만, 해당 직업 자체를 온전히 대체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창작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본다. 창작을 둘러싼 맥락 안의 참여자들이 모여 힘의 균형을 다잡고, 체계적으로 현시대에 맞는 규칙을 만들어갈 때다.

 

참고문헌

Reuters. U.S. appeals court says artificial intelligence can’t be patent inventor. 2022-08-06. https://www.reuters.com/legal/litigation/us-appeals-court-says-artificial-intelligence-cant-be-patent-inventor-2022-08-05/

George & Walsh (2022). Artificial intelligence is breaking patent law. NATURE Comment.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2-01391-x

Villasenor (2022). Patents and AI inventions: Recent court rulings and broader policy questions. Brookings. https://www.brookings.edu/blog/techtank/2022/08/25/patents-and-ai-inventions-recent-court-rulings-and-broader-policy-questions/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AI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① 인공지능이 나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379

②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바빠야 한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10

③ 인간이 AI보다 한 수 앞서야 하는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53

④ AI에게 추앙받는 사람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684

⑤ 메타버스서 공포증 극복·명품 쇼핑...‘비바 테크놀로지 2022’ 참관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24

⑥ 월경·난자 냉동... 79조 펨테크 시장 더 커진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977

⑦ 사람을 살리는 AI 솔루션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124

⑧ 이상행동 탐지·채팅앱 신고...AI로 스토킹 막으려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68

⑨ 일하다 죽지 않게 만들 기술이 필요하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998
⑩ ‘AI 예술가’는 이미 현실, 이제 창작자들이 연대해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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