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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비롯해 여성들이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걱정과 조바심이 천성이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만큼 위험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Shutterstock

“괜찮아?”
“뭐가?”
“아무거나.”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가 제일 많이 하는 대화가 이렇다. 아내가 느닷없이 괜찮냐고 물으면 난 거의 자동적으로 이렇게 되묻는다. “뭐가?” 내 나이가 예순이 넘고 은퇴까지 하고 나니 여러 가지로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다. 아픈 곳은 없나? 집에서 혼자 무료하지는 않나? 그래서일까? 툭하면 저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괜찮아?” 

아내의 걱정과 조바심의 이유

예전에는 아내의 걱정과 조바심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했다. 뭐가 저렇게 불안한 걸까? 나이에 비해 나도 건강한 축에 들지만, 사실 우리 같이 평범한 가정에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게다가 우리나라 정도면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 속하잖아? 저렇게 걱정이 많으면서 어찌 사노?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아내가 사는 공간과 내가 사는 공간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다.

아내를 비롯해 여성들이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걱정과 조바심이 천성이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만큼 위험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만든 남성 중심 세계는 지금껏 여성들에게 불편과 희생을 강요하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다. 남자들에게야 한없이 안전한 공간이나 여성들은 그 반대로 그 안에서 신음하고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남성들이 세운 기준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춘 채 혹시나 있을 위협과 폭력에 조마조마하며 어두운 길 골목, 길목마다 두리번거려야 했던 것이다. 이 세상은 아내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끝도 없는 악몽이었으리라. 우리는 한 공간에 존재하나 그 성격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다르다. 결국 차별, 성추행, 폭력, 혐오 따위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 깊이 자리 잡고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서는 것이다. 

“여자들은 종족이 다른 것 같아.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

남자들이 종종 하는 얘기다. 어쩌면 당연하겠다. 서로의 공간이 다른 한 우리는 동족이 될 수 없다. 교도관이 감옥 안의 재소자를 위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들어가 재소자와 함께 재소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남성들이 자신의 관점으로 여성을 재단하려 드는 한, 그들에게 영원한 타자일 수밖에 없다. 내가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내가 다른 세상을 살아왔으며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더는 내 관점으로 아내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다른 세상에 산다는 것

“구조적인 성차별”이 없다는 무지하고 무도한 시대다. 여성들의 세계도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런 징후는 이미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유와 경쟁이 국가의 모토로 자리를 잡았다. 남녀의 임금 격차는 OECD 최고 수준으로 벌어지고 여가부가 폐지되고 교과서에서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사라진다. 국가의 안전망은 사라지고 여성과 소수자 등 약자의 입지가 취약해지며 유리천장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물론 아내의 걱정과 조바심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간 역차별을 불평하던 남성들한테야 더 없이 신날 일이겠으나 여성들이야 말로 바로 그들의 어머니고 아내이고 미래의 딸들이다. 우리가 우리 아내를, 딸들을 사랑한다면,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나마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기를 바란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그들의 안부를 물고 확인해야 할 때다. “괜찮아?”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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