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화상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 부친 9월 숨져
피해자 모친도 2년 전 소송 제기 직후 세상 떠나

7일 오전 경기 화성시 한 근린공원에서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이춘재(57)에 희생된 초등학생의 위령제가 열려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7일 오전 경기 화성시 한 근린공원에서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이춘재(57)에 희생된 초등학생의 위령제가 열려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33년 전 경기도 화성시 일대 연쇄살인범 이춘재에게 초등학생 딸을 잃은 김용복(69)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선고를 두 달 앞두고 지난 9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딸이 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찰에 대한 원망을 드러냈던 김모 양의 아버지 김용복씨가 소송 1심 선고공판 두 달 전 사망했다. 

김양의 어머니 역시 2년 전 소송을 제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소송은 김양의 오빠가 홀로 맡게 됐다.

김씨의 변호인은 "신체 건강하고 충분한 기대 수명이 남아있던 김양의 부모는 경찰의 위법 행위가 밝혀진 지 불과 2∼3년 안에 모두 사망했다"며 "경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한 행위의 영향이 결코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 김모(당시 8세)양은 1989년 7월 7일 낮 12시30분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집에서 600m 떨어진 곳까지 친구와 오다가 헤어진 뒤 실종됐다. 

이 사건은 30여년간 미제 가출 사건으로 남아 있었으나 2019년 이춘재가 “김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범행 당시 줄넘기로 두 손을 결박했다”고 자백하면서 재수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당시 실종 사건을 맡았던 경찰이 김양의 시신과 유류품 발견 사실을 은폐해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고 형사계장 등 2명을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적 책임은 지지 않았다.

딸이 범죄사건 피해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김용복 씨는 경찰에 대한 원망을 드러냈다.

그는 2020년 7월 딸의 책가방 등 유류품이 발견된 경기 화성시 한 근린공원을 찾아 헌화한 뒤 취재진에게 "30년 동안 (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는 게 너무나도 원통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수사관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감춰서 뼈 한 줌도 못 찾게 했느냐"며 "(이 근처가) 개발되기 전에라도 시신을 찾았더라면 뭐라도 발견했을 텐데…이춘재보다 경찰이 더 나쁘다"고 덧붙였다.

김씨 가족은 "경찰의 조직적인 증거인멸로 살해사건에 대한 실체 규명이 지연됐다"며 2020년 3월 수원지법에 정부를 상대로 2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인간의 생명과 신체의 존엄, 인격권을 도외시한 수사 편의와 성과주의로 기본 윤리 의식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높다"며 "피고(정부) 소속 경찰관이 범행을 부인하면서 원고들의 분노와 울분 등 정신적 고통은 심해졌다"고 소송 제기 이유를 밝혔다.

김씨 가족 변호인은 "부모로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는 등) 마지막 희망까지 무너지니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손해배상 금액을 기존 2억5000만원보다 많은 4억원으로 변경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17일 오후 2시 수원지법에서 진행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