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에서 운영하는 여성포털 사이트 위민넷(www.women-net.net)에서는 여성들의 꿈을 지원하는 '위민넷 소망지지 이벤트'를 실시했다. 5월 3일부터 6월 16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총 1031건의 여성들의 소중한 꿈이 접수되었다. 힘들게 살아온 남편을 위해 이번 여름 휴가 때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주고 싶다는 소망, 재정적 어려움으로 흩어져 살았던 가족들이 어머니 생신날 다 함께 모여 마음 편히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부터 이주여성들을 위한 상담소 개소를 위한 집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소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망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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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넷 운영팀의 1차 심사를 거쳐 박혜란 여성학자, 신혜수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부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정자 녹색미래 공동대표, 임도경 <뉴스위크> 한국판 편집장, 황인자 서울시 복지여성정책 보좌관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2차 심사를 통해 '위민넷 큰꿈상'(상금 50만원) 김경숙, 송지영씨 2명, '위민넷 소망상'(상금 10만원) 정오임, 김명좌, 류정희씨 등 10명, 'CJ 소망상' 10명(5만원 CJ 외식권 증정)의 소망들을 선정했다. 선정된 여성들의 소망글 중 몇 편을 뽑아 소개한다.

▶<일러스트 박향미>

위민넷 소망상

◆ 천정금씨 (ID: c1004jk)

-노인복지사 되고파

우리나라 나이로 35살이고 아이 셋인 여성가장 아줌마예요. 많지도 작지도 않은 나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직장을 구하려 하고 하니 고졸이죠. 특별한 기술 없죠. 일할 만한 데가 없어요. 식당 일이 전부예요. 제 꿈은 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는 거예요. 그냥 막일을 해도 되는데 저는 지금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론, 실습 1년 과정이에요. 공부도 재미있고요. 1년 뒤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저 잘할 거예요. '꿈은 꼭 이루어진다'처럼 열심히 할 거예요.

◆ 이해승씨 (ID: riselhs)

-농촌 문화공간 절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농촌에 시집와 산 지 벌써 10년입니다. 농사일에 파묻혀 지낼 때는 몰랐습니다. 아이들이 들판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텔레비전말고는 볼 것이 없다는 것을, 할매와 할배말고는 말할 친구가 없다는 것을. 내 아이가 학교에 갈 때즈음 알았습니다. 아! 농촌 아이들이 함께할 무엇이 필요하구나. 뜻 있는 여자 몇몇이 힘을 모았습니다. 공부도 쪼매 가르치고 문화활동도 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체험학습이 가능하게 하자고. 엄마아빠 논에 나가 손잡을 수 없을 때 우리가 그 손잡아 주며 좋은 추억 만들고 희망의 발판 만들자고. 시작하며 가슴도 뭉클했지만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장소도 마련해야 하고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놀이기구며 학습도구도 필요하고, 경제적으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농촌에서는 모든 것이 몇 배나 어렵습니다. 농촌아이들을 위한 제 꿈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김명좌씨 (ID: yenayesol)

-사십엔 꼭 내 일을 찾고 싶다

저는 38세의 초등학교 4학년, 3학년 그리고 이제 16개월 된 세 딸을 둔 엄마입니다. 나이 40이 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하던 중 올해부터 서울시에서 셋째 자녀 보육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생겨 재취업교육(3D Animation)을 받고 있습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했고 길지는 않지만 실무경험도 있지만 결혼과 함께 아이 양육에 부딪혀 일을 접었습니다. 가난한 신랑을 택했기에 경제적인 부담을 함께 지려 했지만 보육에 드는 비용이 더 컸기에 전업주부의 길로 방향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는 중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실직자재취업교육을 3개월 받고 워드2급자격증을 땄습니다.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남편이 수입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여 1차에만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부에 구직 신청해 방역회사를 창업하는 개인사업회사에서 3개월을 근무했습니다.

업종을 건설 쪽으로 바꾸려해서 또 그만두었지요. 보육교사 자격을 따려 종로 YMCA 보육교사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던 중 건강상에 문제로 1학기 말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뜻을 접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셋째아이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생명을 어찌한다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어 가난한 흥부네 가족이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그 학원 왜 다녀?”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조차 나이가 들었다고 재취업교육 면접에서 탈락한 사람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런지.

원격대학에서 평생교육학과 3학년 편입을 해서 공부를 하려 했지만 그것도 학비가 만만치 않고 졸업 후 진로도 가망이 없다고 하여 6회차 강의까지만 듣고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확실한 길이 없는 곳에 가난한 사람이 계속 투자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분명 내가 잘할 수 있고 나 같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라 믿고 계속 도전하고 꿈을 찾아보렵니다. 40세에는 꼭 내 일을 하고싶습니다. 경제적인 부담뿐 아니라 이 세상에 내가 온 이유를 반드시 발견하고 그 뜻을 이루고 싶습니다.

◆ 류정희씨 (ID: heejr741)

-공무원 돼 반드시 자립하겠다

지금의 제 꿈은 공무원입니다. 대학 1학년이던 1993년도에 사고로 다니던 대학마저 휴학하고 지금까지 10년 넘게 재활에만 전념해왔습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다시 복학해서 학업을 마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복학은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게 된 한 TV 프로가 그렇게 지내왔던 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나와 같이 대학생일 때 당한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으면서도 미국의 최연소 부장검사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며 수많은 노력을 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당당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그 사람의 얘기는 감동과 함께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 더 부끄럽게 한 건 어머니가 다음날 내게 건네준 공책들이었습니다. 그 공책들은 아버지가 장애를 극복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기사들을 하나 하나 스크랩해둔 것이었습니다. 하나 가득 그 공책들을 채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기사들과 그 기사들 밑에 일일이 그 사람들의 연락처를 적어놓은 아버지의 글씨들을 보며 내가 여태까지 그렇게 날 포기하며 살아온 것은 내가 가진 장애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닫아놓은 좁은 편견 때문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나 혼자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공무원 채용인원 중 일정 비율로 장애인을 채용한다는 것을 알고 공무원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나의 형편으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공무원 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10년간이나 손을 놓고 있었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생각보다 너무나 힘이 듭니다. 길었던 학업에 대한 공백도 어렵고 힘이 들지만 여태까지 나의 간병으로 힘든 시간을 지나오신 부모님들께 뒤늦게 공부 뒷바라지를 해달라고 하기에도 너무 죄송하고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턴 절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더 욕심을 가진다면 지금의 내 꿈을 이루게 되어 내 힘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내가 희망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위민넷 큰꿈상

◆ 김경숙씨 (ID: saengsa)

-이주여성에게 희망 주는 상담소를

저의 꿈은, 그리고 저와 함께 하시는 분들의 꿈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힘들게 살아가는 외국인 여성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함께 고민하는 상담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입니다. 현재 저희는 여성폭력 관련단체에서 일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의기투합해서 작은 장소를 힘겹게 마련해서는 힘을 모아 역량을 키우는 중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가정폭력과 성폭력 그리고 성매매까지 우리가 이주여성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고 힘이 되어 주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가정법률상담소에서 오랫동안 봉사해오신 권경숙 선생님,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 더욱 이런 일에 용기를 갖게 해주는 여선숙 선생님, 그리고 자칭, 행정과 사무, 기획과 대외활동까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저 김경숙 이렇게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구요, 법률을 전공하신 분, 스페인어를 전공하시는 분, 상담전문가 등 언제든지 자원봉사로 도움을 주겠다고 마음을 열고 계신 많은 분들이 있기에 감히 용기를 내어 이주여성들의 폭력문제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넉넉한 형편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서 집에서 가져온 식탁과 의자를 회의용 탁자로 쓰고 있고 아파트 주변에 버려둔 책상도 주워 오고 책장도 주워 오면서 하나씩 공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모니터는 구했는데 아직 본체를 구하지 못한 상태라 사무실에서 컴퓨터 사용을 할 수 없어 집에서 이렇게 신청을 하게 되었구요. 아직은 전화도 설치하지 않은 상태고, 하나씩 갖추고 준비해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부족한 시점에서도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저희의 꿈에 지원을 해주고 힘을 주신다면 저희의 첫 출발에 큰 힘을 하나 더 실어주시는 거라는 생각에 더 씩씩하게 꿈을 향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돈을 주신다면, 캐비넷도 구입하고, 사무용품도 마련해서 상담소의 모양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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