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 이용 스토킹 범죄
무죄 선고 올해만 최소 4건
“전화 벨소리나 부재중 전화 알림은
스토킹처벌법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아냐”
전문가들 “비상식적 판결”

‘집요하게 전화해도, 피해자가 전화를 안 받았다면 스토킹 범죄 행위로 볼 수 없다’?

납득하기 어려운 법원 판결이 나와 비난 여론이 거세다. 하루 4시간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등 스토킹을 일삼은 남성이 이 논리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여성신문 취재 결과, 법원이 같은 논리로 스토킹 무죄 판결을 내린 사례가 올해만 최소 세 번 더 있었다. 전문가들은 “비상식적 판결”이라며 혀를 찼다. 현실의 범죄를 아우르지 못하는 현행법의 문제도 분명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법을 해석한 재판부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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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조치 어기고 하루 4시간 동안 10차례 전화해도
안 받았으니 스토킹 무죄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는 지난 10월 27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남성(54)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남성은 지난 3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헤어진 연인을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됐다. 주로 ‘발신 표시 제한’ 기능을 이용해 전화하거나 영상 통화를 시도했다. 하루 4시간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전화하기도 했다. 지난 4월 법원이 이 남성에게 피해자의 집 100m 이내 접근 금지, 휴대전화 연락 금지 등 잠정조치 결정을 내렸지만, 무시한 채 피해자의 직장에 찾아가거나 전화, 문자 등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하루 4시간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등 스토킹을 일삼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천지방법원 2022고단5049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하루 4시간 동안 10차례 연속으로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등 스토킹을 일삼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천지방법원 2022고단5049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스토킹처벌법상 무죄라고 봤다. “전화기에 울리는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고, “‘부재중 전화’도 휴대전화 자체 표시 기능에 불과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도달하도록 한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보통신망법상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5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이 남성이 피해자를 폭행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직장을 찾아가는 등 스토킹한 혐의는 공소 기각됐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법원에 밝혔기 때문이다. 

20시간 동안 25회 전화...안 받았으니 스토킹 무죄

스토킹 가해자가 약 20시간 동안 피해자에게 총 25차례 전화한 일은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제주지방법원 2022고단814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스토킹 가해자가 약 20시간 동안 피해자에게 총 25차례 전화한 일은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제주지방법원 2022고단814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지난 9월 7일 제주지방법원 형사3단독 강란주 판사도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여성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성은 피해자와 이별한 후 2020년 4월~5월까지 약 한 달간 피해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총 53회 보내는 등 계속해서 연락한 혐의를 받는다. 2020년 4월 15일 피해자의 집에 침입하려 했고, 이후로도 피해자의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집 현관문에 귀를 대고 안쪽의 소리를 들으려 한 혐의가 인정됐다.

그러나 이 여성이 2021년 12월 29일~30일 피해자에게 총 25차례 전화한 일은 스토킹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토킹처벌법상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말·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로 볼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보통신망법상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5년 대법원 판결이 이 판결문에서도 등장한다. 피고인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80시간 명령을 받았다.

두 달간 인스타 영상통화 27회 시도...안 받았으니 ‘무죄’

스토킹 가해자가 약 두 달간 피해자에게 총 27회 영상 통화를 건 일은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인천지법 부천지원 2021고정734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스토킹 가해자가 약 두 달간 피해자에게 총 27회 영상 통화를 건 일은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인천지법 부천지원 2021고정734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오승희 판사도 지난 6월 16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성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성은 자신의 남편과 피해자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하면서 2021년 4월 13일~6월 20일까지 총 27회에 걸쳐 피해자에게 인스타그램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상식적으로 스토킹 행위로 볼 수밖에 없지만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정보통신망법상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행위로 볼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재중 전화 수신 기록 역시 정보통신망을 통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문언이 아니”라고 봤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보통신망법상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5년 대법원 판결이 여기서도 인용됐다. 

재판부는 2021년 4월 21일~6월20일까지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총 45건 보내 피해자의 불안감을 유발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 벌금 70만원형을 선고했다.

스토커 전화번호 차단해서 전화 못 받았다고 ‘스토킹 무죄’

스토킹 가해자가 약 한 시간 동안 피해자에게 총 26회 전화했으나, 수신거부를 해서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서울남부지법 2022고단883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스토킹 가해자가 약 한 시간 동안 피해자에게 총 26회 전화했으나, 수신거부를 해서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서울남부지법 2022고단883 판결문 일부. ⓒ판결문 캡처

서울남부지법 형사5단독 윤지숙 판사도 지난 6월 2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탄희 의원실이 제공한 판결문을 보면, 이 남성은 옛 연인에 집착해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깜짝 이벤트”를 계획했다. 퀵배송업체 기사, 배우 지망생 등을 섭외해 피해자를 집 밖으로 불러내 시비를 걸게 하고, 자신이 나타나 극적으로 피해자를 구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실행한 2021년 12월 22일, 놀란 피해자는 근처 편의점으로 도망쳤다. 남성은 그 직후 피해자에게 총 26회 전화했는데, 피해자는 받지 않았다. 남성의 번호를 수신거부, 차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무죄라고 봤다. 스토킹처벌법상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말·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로 볼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시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보통신망법상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5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남성이 같은 날 피해자와 통화하고, “정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너 사는 곳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렇게 만나” 등 총 8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낸 행위는 스토킹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고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 120시간 이수 명령을 내렸다.

이어보기 ▶ “스토커 처벌하려면 전화 꼭 받으란 말인가” 전문가들 발칵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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