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도 청년 여성이 ‘일’을 합니다]
2. 지방 청년 여성 문화 예술인 3인 인터뷰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지방 예술계
돌봄 문화·가능성 보고 예술 꽃피워
“커뮤니티와 과정 중심의 지원 필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21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30대 예술인들은 총 8만4,489명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청년, 특히 여성들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는 통계가 나와 있지 않다. 전체 예술인들 대상 통계는 있는데, 총 16만4,895명 중 11만8,861명인 72%가 서울과 경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28%만이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 집중되어있는 예술 환경에서도 지방의 예술을 꽃피우는 청년들이 있다.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 송원(36) 씨는 처음에는 서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방에 남았다. 그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안정적인 공간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삶의 밸런스가 중요했다. 쌓아 놓은 지방에서의 저변도 있었다”고 전했다.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펑크 록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베이시스트 배들소 씨도 서울에서 1년간 지냈지만 대구로 돌아왔다. “서울에서의 1년 동안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들이 있는 대구로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그라피티 활동 중인 곽혜지(팡세) 씨. ⓒHyeon Gwang Downey Cho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그라피티 활동 중인 곽혜지(팡세) 씨. ⓒHyeon Gwang Downey Cho
북성로 그래피티 벽화(2020) by.팡세 (곽혜지)
북성로 그래피티 벽화(2020) by.팡세 (곽혜지)

스물두 살 때부터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그라피티 활동을 하고 있는 곽혜지(팡세, 30세) 씨는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고 싶어서 대구에서 지내다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유대관계와 같은 지역적 특색에서 대구의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동시에 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원 씨와 곽혜지 씨가 지방에서 청년 여성으로 예술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같았다. 지방 예술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 송원 씨는 “지역에서는 여성의 서사를 이야기하면 티켓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2021년 서울에서 열린 페미니즘연극제에 참가했던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당시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라는 작품으로 참여했던 송원 씨는 작품이 매진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곽혜지 씨도 “일상에서 여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미술작가마저도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지역 내에 있다”고 밝혔다.

전주에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는 송원 씨.
전주에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는 송원 씨.
공연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의 한 장면. ⓒ혜영
공연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의 한 장면. ⓒ혜영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청년’의 삶도 녹록지 않다. 지방의 예술 시장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송원 씨는 “지방에는 ‘돈을 주고 예술을 소비한다’는 개념이 없다”며 “지원금과 보조금에 의존하는 형태라, ‘심의위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나 인맥·평판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팡세 씨는 전시 공간이 부족한 것을 짚었다. “전시 공간이 부족하니까 개인의 목소리가 표현될 길이 없고, 그러다보니 그걸 관람객들이 볼 기회가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상으로도 이가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21 전국 문화 기반 시설총람에 따르면 전국의 미술관은 271개인데, 그중 111개인 약 41%가 서울과 경기에 위치해 있다.

서울 지역 예술가들과의 차별 대우도 존재한다. 배들소 씨는 “서울에서 온 예술가들은 경력에 상관없이 빠르게 인정받지만, 지방 예술인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지방 예술인들은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청년들이 도움을 받고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는 얼마나 형성돼 있을까. 송원 씨는 “전주는 각자도생에 가깝다.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있지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연극협회가 있고 지역에서는 중요시여기지만 서울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곽혜지 씨는 “대구는 북성로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모이고 있다. 그곳에 독립출판서점 등이 있어 살롱 및 커뮤니티가 생겼지만 최근 재개발 중”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좌 배들소/우 김명진 ⓒPallo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좌 배들소/우 김명진 ⓒPallo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베이시스트 배들소 ⓒ손진영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베이시스트 배들소 ⓒ손진영

지방에서 청년 여성이 예술 활동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장르를 넘어서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배들소 씨는 “마초적인 씬 안에서 열심히 살고 멋지게 활동하는 예술 창작자들이 존재하는데, 이런 분들과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송원 씨는 청년 예술인들에게 과정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원 씨는 “예술인, 특히 청년들은 실적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과정 자체를 지원해주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인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주는 것도 중요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노영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정책연구실장은 “청년 지원사업들은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사업, 로컬크리에이터사업, 도시재생뉴딜사업 등 문체부뿐만 아니라 행안부, 중소기업부에서 실시하고 있다”며 “다만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부분에서는 개선되어야 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 청년 예술인들은 인터뷰를 마무리지으며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왜 지방에서 예술활동을 하는지’를 강조했다. 송원 씨는 “지역은 구성원들을 돌보는 특유의 돌봄문화가 있다”며 “이가 사람들을 남아있게 하고, 배우를 함께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혜지 씨는 “지역이 얼마나 가능성이 많은 곳인지에 대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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