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연합·민주노총 등 5개 단체
내일 용산 대통령실 앞 규탄 기자회견
여성연합 “거짓 문건 황당...경찰 접촉 없었다”
민주노총 “명백한 사찰...경위 조사·처벌해야”

경찰의 ‘이태원 참사 여론동향’ 문건 후폭풍이 거세다. 문건에 언급된 시민사회단체들은 “명백한 사찰행위”, “정치적 선동과 날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등 5개 단체는 내일(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연다.

SBS가 11월 1일 공개한 경찰청의 10월 31일자 ‘정책 참고자료’ 문건 일부. ⓒSBS 공개 자료 캡처
SBS가 11월 1일 공개한 경찰청의 10월 31일자 ‘정책 참고자료’ 문건 일부. ⓒSBS 공개 자료 캡처
SBS가 11월 1일 공개한 경찰청의 10월 31일자 ‘정책 참고자료’ 문건 일부.
SBS가 11월 1일 공개한 경찰청의 10월 31일자 ‘정책 참고자료’ 문건 일부.
SBS가 11월 1일 공개한 경찰청의 10월 31일자 ‘정책 참고자료’ 문건 일부.
SBS가 11월 1일 공개한 경찰청의 10월 31일자 ‘정책 참고자료’ 문건 일부.

지난 1일 SBS는 경찰청이 지난 10월 31일 작성한 ‘정책 참고자료’ 문건을 공개했다. ‘대외공개, 수신처에서 타 기관으로의 재전파, 복사 등을 할 수 없다’고 표기돼 대통령실 등 상위 기관 보고용으로 추정된다.

문건에는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이 이태원 참사를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 만큼 대형 이슈”로 보고 있고, “‘카페글·카톡 지라시 등을 공유하며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하는 상황이라 대처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이 10월 30일 발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애도 성명도 언급됐다. 경찰청은 여성연합이 “당장은 ‘여성안전’ 문제를 본격 꺼내들긴 어렵지만 추후 여가부 폐지 등 정부의 반(反) 여성정책 비판에 활용할 것을 검토 중이라 함”이라고 적었다.

이에 여성연합은 2일 성명을 내고 “경찰청은 마치 여성연합 관계자와 접촉하여 내부 정보를 알아낸 것처럼 거짓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여성연합은 경찰과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위와 같은 내용도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경찰청은 우리가 이번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며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고, 마치 단체 내부 구성원과 소통한 것처럼 거짓으로 문건을 작성했다”며 “이에 분노하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여성연합은 “(경찰청 문건) 내용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진보적 시민단체와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시민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정부 책임을 모면하려는 듯 여러 동향을 담았다”며 “이는 정보경찰이 치안정보 수집을 빌미로 민간인을 광범위하게 사찰한 것으로 보이고 '경찰관 정보수집 관련 규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했다.

또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지 천박한 정치적 선동과 날조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다. 그 시간에 할 일은 경찰 본연의 책무를 방기한 것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습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었어야 했다”라고 꼬집었다.

김현수 여성연합 정책국장은 “대체 어떻게 이런 문건이 작성된 것인지 당황스럽고 황당하다”며 “지금 정부당국은 일선 경찰관에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데, 경찰 수뇌부와 지자체, 정부의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도 2일 정부의 참사 이후 대응 비판 성명을 발표하면서 “노동시민사회 단체에 대한 사찰 문건”이라고 규정했다. “적법한 직무 영역이고 직무 행위라고 하지만 과연 이런 행위가 지금 경찰이 할 일인가”라고도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참사가 빚어진 다음 날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경찰이 이번 참사로 인해 정권에 가해질 책임론과 위기를 선제적으로 재단하고 이러저러한 의견과 주문 사항을 담아 작성했다”라며 “작성 경위와 보고 과정 등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함께 엄중한 문책과 처벌이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장현술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은 “(민주노총 회의 내용이) 대외 공개 내용도 아닌데 경찰 문건에 적시됐다. 사찰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며 ”국민들에게는 추모와 사태 수습을 하자면서 정부와 경찰은 면피를 위한 여론조성 활동을 하는 것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여성연합, 민주노총,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전국민중행동 등 5개 단체는 3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용산구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연다. 이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인재’로 규정하고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경질 촉구를 비롯해 여전히 버젓하게 음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사찰행위에 대해 규탄”할 계획이다.

이태원 참사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태원 참사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뒤 너비 3.2m 남짓의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2일 오전 11시 기준 156명이 숨지고 172명이 다쳤다. 야외 마스크 착용 해제로 3년 만의 ‘노 마스크’ 핼러윈이었다. 당시 이태원 일대에 10만 명 이상이 몰렸다고 한다.

정부당국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건 아니다”,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도 31일 “주최 측 요청이 없을 때 경찰이 선제적으로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 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참사 직전 위험을 감지한 시민들의 112 신고가 쇄도했는데도 경찰이 아무 조처를 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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